2년 전 친구 모임이 있어서 술 한잔하고 커피 한잔 마시려고 골목길을 걷다가 유리창 너머로 걸려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았다.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면 미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예전의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쯤 지나서 그 결심을 현실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기억을 더듬어 하얀고래 미술교습소를 찾았다.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시는 고선생님을 마주하고, 간단한 질문 두어 개를 주고받는 것으로 그림 그리기 입문 과정을 통과했다.
다음 주 금요일 첫 번째 방문에서 캔버스를 받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선택하고, 그걸 화면에 스케치해 보라는 것이 시작이었다. 스케치는 중학교 이후로 처음 해보는 것. 꽤나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대충 그려진 스케치를 고선생님이 다시 다듬어 주시고, 거기에 초록색(Sap Green) 물감을 칠하는 걸 한번 보여주시고 그걸 따라 하는 것이 내 첫날이었다.
그때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싶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삶은 조금 더 단조로워지는 느낌이다. 삶의 반경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싶다. 요새 한주가 지났다는 기준은 금요일 저녁 화실 방문과 토요일 오전의 골프 연습 이 두 개다. 생각보다 이 두 가지 일상이 금세 다가온다. 화실에 나가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시회 얘기를 들었었다. 먼 얘기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일주일 앞이다. 내 그림이 거기에 함께 걸린다는 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 결과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뿌듯하다.
카탈로그에 포함된 내 그림들 이미지다. 그림보다 사진이 더 근사하게 나왔다. 저렇게 배치해 놓으니 멋지다. 카탈로그 설명에 고선생님께 고맙다는 글을 보냈었는데 배치가 애매해서 빠졌다고 한다. 고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을게 분명하다. 여기에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그림이라는 멋진 취미가 생겼다. 어느 지점이 내 한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늘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여전히 캔버스를 마주하고 스케치를 시작할 때면 이걸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싶긴 하다. 뭐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0. 올바른 의사 결정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가?
국가나 회사의 수많은 결정들은 토론을 거치건 그렇지 않건 결국 최종 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르게 될 것이다. 이 판단의 결과가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이 결정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할까? 그리고 이 선택이 더없이 중요하다면, 둘 또는 그 이상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선택하는 것과 선택 이후에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 이 두 가지의 가치 비율은 어떤 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사회에서 흐름을 결정하는 위치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은 보상이 주어진다. 물론 선택이 실패할 경우 본인을 포함 선택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수도 있고 더 많은 비난이 선택한 이에게 쏟아질 것이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그 선택을 찬양하고, 선택을 한 사람에게 환호가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선택의 기회 역시 그 사람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어 본다면 뭐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시스템이 효과적인 선택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택에 대한 부가적인 보상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의문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사고 실험을 진행해 본다.
1. 50% 확률의 선택
이 사건은 대항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무역선이 출항하고 향신료를 가득 싣고서 본국으로 향하는 배가 있다. 이 배에 선적된 물품을 판매하면 100 두카트-베네치아 공화국 금화-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배는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게 되고 거친 바람 속에서 위험한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이 해협을 통과할 확률은 50% 정도로 보인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제안한다. 내가 이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시킨다면 내 몫으로 전체 수익의 20%를 달라고 한다. 선원들은 절반의 확률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선장의 제안이 크게 나쁘지 않아 보여서 찬성하고 선장을 도와서 해협을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항해에 집중한다. 덕분에 배는 성공적으로 항구에 도착했고 선장은 약속대로 수익의 20%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선원의 수는 50명 정도로 가정한다.)
질문: 선장이 제안한 20% 수익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적정하지 않다면 선장의 몫은 어느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10% 확률의 선택
위 문제와 똑같은 조건이다. 다만 달라지는 점은 풍랑속에서 해협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확률이 10% 라는 점이다. 이 경우 선장은 자신의 항해에 대한 대가로 어느 정도를 요구해야 할 것인가? 50% 확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질문: 선장은 선원들에게 자신이 몇 % 이익을 가져간다고 얘기 하는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50% 확률일 때 보다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10% 확률에서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친 선장이 50% 확률의 선장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것일까?
3. 50% 확률 게임에서 60% 성공률이 기록 되었다면...
다시 1번 문항으로 돌아가서 항구에 도착한 선원들은 같은 시기에 출항한 배들 수십 척이 해당 풍랑을 해치고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100척이 출항해서 같은 조건의 난관을 통과한 후 60척이 도착한 것이다. 각 배의 선장들은 모두 20%의 인센티브를 얻었다. 그러자 선원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다. 50% 확률에서 60%의 배가 성공적으로 돌아왔다면 (일반선장 n명 * 0.5) + (특별한 선장 m명 * 1) = 60, n + m = 100 이렇게 두 가지 수식을 m = 40을 구할 수 있다. 즉 100% 확률로 항해를 성공시킨 선장이 존재한다면 60명 중 1/3인 20명 밖에는 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각 선장들이 어느 정도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이라면 50% 확률로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을 60% 확률로 통과한 것이고, 항구에 도착한 60명의 선장들은 도착하지 못한 40명의 선장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다.
만약 좀 더 실험을 해볼 수 있다면, 일반 선원에게 키를 쥐어주고 항해를 했을 때의 확률도 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확률이 60% 거나 아니면 그 근처라고 한다면 우수한 선장이 항해를 성공시켰다는 것은 그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발생한 미신이었을 뿐이라 결론이 날 것이다. 그리고 선원들은 선장에게 별도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4. 10% 확률 게임에서 12% 성공률이 기록되었다면...
다시 성공 확률 10%를 가지고 사고 실험을 해보자.
항구에 도착한 배가 100척 중 12척이 도착했다면, 98척의 배는 10% 확률로 나머지 2척은 100% 확률로 도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확률이 실재와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100척의 선장들이 12% 성공 확률로 항해를 했을 수도 있고, 50척은 10% 성공 확률로 나머지 50척은 14% 성공 확률로 항해했다고 해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즉 결론만으로 각 선장의 항해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위 50% 예처럼 선원들이 항해했을 때 확률과도 비교해 보야야 한다. 그리고 결론이 도출된다면 비로소 선장이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위 50% 상황과 비교해서 10%를 통과한 선장들이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는지 역시 알 수 없다.
5. 반복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 다음 선택을 맡겨야 할 것인가?
위 예에서 얘기하고 싶은 점은 정확한 확률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단지 선택의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정확한 선택을 통해서 결승점에 도달한 사람들이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50% 확률 게임으로 돌아가서 100만 명이 50% 확률의 동전 던지기를 한다면 누군가는 20번 연속 앞면이나 뒷면을 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결과만 가지고 21번째가 연속해서 앞면과 뒷면이 나오는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경우로 본다면 우리는 연속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 다음 선택을 맞기는 경우가 많다. 계속해서 실패하는 선택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다음 선택을 맞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능력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 나는 이 사고실험에서 능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능력에 대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연속적으로 선택에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속적인 성공의 경우 그 선택으로 인해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성공은 보다 많은 인센티브를 보장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확률이 낮은 선택을 결정한 기회를 가진 사람에게 더 높은 인센티브가 주어질 가능성 역시 높을 것이다. 그 선택이 어디까지가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운에 맡겨진 것인지를 떠나서 말이다.
5. 확률을 알 수 없는 경우
우리는 일상에서 훌륭한 선택의 결과들을 마주한다. 작게는 히트 상품에서 크게는 기업이나 국가의 성공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게 한 선택들을 찬양한다.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이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커다란 모집단을 두고 실험을 한다면 반드시 크게 성공한 케이스와 크게 실패하는 케이스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모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표본을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성공한 소수의 예만 가지고 선택의 효율성을 입증할 수 있을까?
매년 벼락처럼 성공한 기업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매주 극한의 낮은 확률을 가진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로또는 성공할 확률이 정해져 있고,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의 확률이 정해진 성공 확률에 수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로또는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다음 선택을 이미 로또 1등에 성공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공한 제품이나 기업의 경우에는 어떨까? 우리는 그 성공에 이른 선택들의 정확한 확률을 알 수 없다. 단지 선택이 성공했다는 결과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선택에 성공한 사람의 경우 다음번 선택에 성공한다면 보다 높은 인센티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선택의 확률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 설혹 추정치를 제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정확한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주요한 선택들은 반복적인 시험을 통해서 확률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나 푸틴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지 확률을 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 사고 실험은 여기까지다. 다시 이전의 질문을 던져본다.
1. 50% 성공확률을 성공시킨 선장에게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주어야 하는가?
2. 10% 성공확률을 성공시킨 선장은 50% 성공확률의 항해를 성공시킨 선장보다 인센티브를 더 받아야 하는가?
3. 10% 성공확률을 성공시킨 선장에게 다음 항해를 맡겨야 하는가? 그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마지막날은 비행기가 출발하는 수요일이지만 이날이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다. 오후 5시 비행기라 내일도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여행에서 보거나 느끼고 싶었던 목표들은 이날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미뤄두었던 이스탄불 야경을 보는 걸 위주로 일정을 잡아 두었다. 오전에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둘러보고 잠시 쇼핑몰에 들렀다가 3시 30분에 시작하는 '이스탄불 미식 여행'에 합류하는 것이 아침에 목표로 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여정으로 인해서 이날 일정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가려고 숙소에서 나와서 M2 라인 Sishane 역으로 나왔다. 지하철로 두 코스를 가서 내렸다. 그리고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말로 말을 건다. 혹시 한국분 아니냐고 묻는다. 맞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하더니 자신은 그랜드바자르 주변의 고서적 파는 곳에 가려고 여기서 내렸다고 한다. 길이 비슷해서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독일에서 제빵공부를 하기 위해서 7년 전에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지금은 30대 중반이라고 얘기했다. 휴식차원에서 10년 만에 이스탄불을 방문했다고 한다. 나름 얘기가 잘 통해서 모스크까지 동행 후 차 한잔을 제안해 왔고 나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남는 시간에 쇼핑몰을 둘러본다는 오후 일정이 그리 탐탁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일단을 함께 모스크 쪽으로 이동했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는 한가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안내글에는 규모는 아야 소피아나 블루 모스크 보다는 적지만, 흠잡을 곳 없는 건축방식으로 지어졌다고 나와 있다. 실제 모스크의 느낌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블루 모스크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모스크에 딱 필요한 정도의 장식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수수하게 지어진 모스크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곳이 관광객들이 주로 몰리는 지역과 떨어져 있어서인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 모스크는 갈라타 다리를 걷다 보면 우측 언덕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 모스크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으면 좌측 편에 조그만 모스크와 어울려서 이곳이 터키구나 싶은 이국적인 느낌의 사진을 만들어 준다.
모스크를 둘러본 후 지하철에서 만난 태정씨가 근처 찻집으로 안내한다. 원래는 이곳에서 아침을 먹을 얘정이었다는 얘기와 함께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고 한쪽 편엔 마르마라 해가 반대편엔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보인다. 혼자서 이런 곳에 올라와 차를 마실 리가 없기에 우연한 인연 덕분에 터키 젊은이들의 문화 한 귀퉁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카페라테 한잔과 바클라바를 시켰다. 차가운 걸 시킨다는 걸 깜빡해서 뜨거운 커피가 나왔다. 터키 여행 중 대부분은 주스나 홍차를 마셔서 커피는 처음 먹는 거다. 우유맛 커피처럼 맹숭맹숭하다. 바클라바를 안 먹어 봤다고 얘기해서 태정씨(제빵사가 직업이어선지 나 보다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가 한번 먹어보라고 시켰는데 여행 도중 몇 번 먹어본 디저트였다. 이날 오후 미식여행에서도 느꼈지만 터키 여행 중 신기해 보이는 것은 한 번씩 먹어봤었는데 그래서 내가 이름만 모를 뿐이지 터키에서 알려진 음식이나 디저트를 대충 다 먹어본 듯하다. 단맛이 너무 강한 디저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역시나 바클라바는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았다. 카페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로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태정씨 여행 스타일을 듣고 있으니 저런 식의 여행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오랜만에 이런 식으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낸 듯하다.
12시가 다 되어서 각자의 일정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커피숍을 나왔다. 처음 내린 지하철역 앞에서 악수하고 서로의 여행을 격려하면서 헤어졌다. 쇼핑몰에 가기엔 시간이 애매해져서 나는 근처에 있는 발렌스 수도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로마의 수도 시스템에 대해선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제대로 남아있는 유적을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어제 본 예레바탄 사라이까지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글을 읽었으니 아마도 그 수로중 일부가 아닐까 추측해 봤다.
10분 정도 걷자 거의 온전한 모습의 수로가 등장했다. 도로 한 복판에 수로가 차들을 통과시키는 문처럼 서 있었다. 수도교를 유지한 상태로 도로가 만들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도교를 통과해서 잠시 바다 쪽으로 걷다가 길을 건너서 다시 수도교 방향으로 돌아와서 수도교를 주욱 돌아보았다. 물이 통과하는 구조를 보고 싶었지만, 위로 올라갈 길이 없어서 아래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수도교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그늘은 찻집 테이블이 주욱 놓여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수도교를 보고 나서 바다 쪽으로 걸었다. 시간을 보니 중간에 점심을 먹고 천천히 걸으면 3시 30분 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점심은 길을 걷다가 평점이 괜찮은 동네 음식점에서 먹었다. 터키식 음식점이었다. 수프와 빵 그리고 고기를 곁들인 밥이 나왔다. 수프는 이전에 소금호수 투어 때 먹어본 기억이 있다.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먹을 만은 한데 엄청 끌리는 맛은 아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해서 수프를 제외하면 나머지 음식은 모두 먹었다. 걸어 내려오는 길에 조그만 동네 이슬람 사원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들렀다. 손을 씻고 나오니 요금이 3리라라고 한다. 역시나 이런 곳도 요금을 받는구나 싶어서 살짝 웃었다.
아타튀르크 다리를 건널까 하다가 옆쪽에 다리 한가운데 Halic 역이 있는 다리를 건너리로 했다. 아침에 오면서 다리 한가운데 지하철 역이 왜 있을까 의아해했었던 그곳이다. 지하철이 다니는 중앙 양 옆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5미터 폭의 다리가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지하철이 통과하면 사람이 걷는 다리가 살짝 흔들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관계로 불편함을 느끼면서 걸음을 재촉해서 다리를 건넜다.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예쁘진 않다.
다리를 건너서 건너편 강변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셀카 몇 장을 찍으면서 쉬었다 가다를 반복했다. 3시 30분 까지는 좀 여유가 있었다. 좀 쉬다가 갈라타 다리를 한번 더 왕복했다.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이 다리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이 맘에 들어서 다른 구도로 몇 장 더 찍어두고 싶어서였다.
미식투어 시간에 맞춰서 카라쿄이 터미널로 향했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성 가이드분이 다가와서 투어 얘기를 하고 나는 맞다고 답을 건넸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본 한국 가족(부부와 두 아들)도 역시나 오늘 투어 일행이다. 시간에 맞추어서 어머니와 딸 두 분이 합류한다. 터키 현지인 가이드 포함해서 9명이다. 터키도 여행 가이드를 하려면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현지인 가이드가 포함되었다고 얘기해 준다.
여행은 내가 어제 먹은 고등어 케밥을 먹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아시아지구로 건너간 다음 홍합밥, 맛집에서 저녁 식사, 바클라바, 꿀을 탄 요거트, 딜라이트를 경험해 보는 경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양을 감상하면서 돌아오는 코스로 이뤄졌다. 나는 음식보다는 이곳 야경을 보는 것이 주목적이긴 했다.
홍합밥을 제외하면 나머지 음식들은 대부분 한 번씩은 먹어본 것들이었다. 이날 먹은 음식들이 나름 유명한 맛집들이어서 맛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홍합밥은 혹시나 먹고 탈 나면 어떨까 싶어서 먹지 않았었는데 이곳에서 처음 맛봤다. 가이드 추천 맛집이라선지 맛은 괜찮았다. 레몬을 뿌려서 먹으면 거의 레몬향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고, 레몬을 뿌리지 않으니 홍합의 맛이 살짝 느껴졌다. 먹을 만은 했다.
저녁식사로 다양한 터키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 나온 맛집이라고 가이드가 얘기했는데 음식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맛있다는 느낌까진 못 받았다. 다양한 터키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새콤한 닭고기 요리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터키 음식은 이런 새콤한 요리가 많다는 얘길 들었던 듯하다.
식사 후에 먹었던 디저트류 중에서는 꿀을 탄 요거트가 괜찮았다. 이곳 꿀의 품질이 매우 좋다는 얘기를 가이드가 전해줬는데 그럴만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간 분들은 이곳에서 꿀을 여러 개씩 샀다. 나는 그냥 조용히 구경만 했다. 호주 여행에서 꿀을 사갔다가 거의 그대로 집에 진열만 해 두었다가 몇 년 후 버렸던 경험이 있어서 평소 먹지 않는 건 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디저트를 먹고 카라쿄이 선착장에 가기 위해서 반대편 선착장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석양이 예뻤다. 다음번에 터키에 온다면 이곳에 숙소를 잡고 저녁에 이곳 선착장에서 야경을 구경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돌아오는 배에 올라타서 카라쿄이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에서 본 야경은 멋졌다. 별다른 비용을 치르지 않고 시간에 맞춰서 배를 타는 것만으로도 이스탄불 야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카라쿄이 선착장에 돌아오니 9시가 다 되었다.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미식여행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서 갈라타탑 야경을 보기로 했다. 일단 갈라타다리 주변의 야경 사진 몇 컷을 찍고 나서 갈라타탑으로 이동했다. 입장권을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로 올라갔다. 타워 꼭대기에는 타워 주변을 바깥쪽으로 돌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나 나는 이런 높은 곳이 질색이다. 그래도 올라왔으니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전체적인 야경의 모습은 좋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다 보니 일반적인 도시 야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야경을 보는 일정을 잡는다면 그냥 갈라타 다리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듯싶다. 가이드가 갈라타 다리와 함께 야경을 볼 수 있는 카페 같은 곳이 있다는 얘길 했었는데 그런 곳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Note. 뤼스템 파샤 모스크는 야경이 가장 예쁜 모스크라고 가이드가 얘기했었다.
Note.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야경은 갈라타 다리에서 본 야경 하고, 카라쿄이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본 야경이다.
갈라타 타워에서 잠시 머물고 바로 나왔다.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바닥이다. 그때 오전에 만난 제빵사가 추천해 준 와인집이 떠올랐다. 마지막 저녁이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평소라면 혼자서 와인을 마시러 가지 않았을 텐데 그냥 들어갔다. 풀바디 와인을 시키고 30분 정도 기다렸다 먹는 게 좋다고 해서 기다리면서 와인을 두 잔 더 마셔서 세잔이나 마셔 버렸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유명한 터키 와인을 물어보고 직원이 소개해준 와인 한 병을 덜컥 한 병을 덜컥 사버렸다. 와인바 가격이니 소매가 보다 훨씬 비싼 가격임에 분명할 텐데 말이다. 하필 핸드폰 배터리가 0%가 돼버리는 바람에 악운이 겹쳤다. 와인 이름을 알았으미 가격만 확인했다면 담날 공항에서 샀을게 분명한데 말이다.
와인바에서 나와서 호텔로 향했다. 핸드폰이 안 켜져서 구글맵으로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술도 살짝 취한 상태라서 걱정이 앞선다. 호텔로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조금 걸으니 아는 길이 나와서 어렵지 않게 호텔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은 하루가 돼 버렸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남은 하루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가는 것 같으니 후회는 안남을 듯 싶다.
한 달간 통계를 보니 평균 10km 정도씩 매일 걸었다. 혼자서 일정을 정하고 구경하고 또 다음 일정을 정하고의 반복이었지만, 장소가 매번 바뀌는 통에 동일한 반복은 없었다.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니 내 예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행기를 마무리하려고 보니 단조로운 일상의 1년보다 더 많은 여행의 기억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언제일지 모를 다음번 여정을 기약하며 이번 여행기는 여기서 마친다.
Note. 체력이 부족해진 탓에 여행에서 하루의 일정은 대부분 오후 5~6시면 끝났다. 덕분에 매일 저녁 일과가 여행기를 쓰는 게 돼 버렸다. 여행 후반부에는 호텔에 돌아오면 의무감에 그날그날의 일정들을 남겨 두었다. 덕분에 한 달간의 여행 기록을 온전하게 남길 수 있었고 나름 충실한 여행기를 쓸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트램을 타고 오갈 때 항상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아야 소피아고 나머지 하나는 예레바탄 사라이 였다. 아야 소피아의 줄은 짐 검사 때문에 생기는 줄이고, 예레바탄 사라이의 줄은 입장권을 끊기 위한 줄이다. 온라인으로 예매한 사람들이 좀 더 빨리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줄을 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호텔서 좀 일찍 출발하는 것이었다. 뭐 엄청 빨리는 아니고 이날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9시 30분 정도 호텔을 나섰다. 트렘을 타고 술탄아흐메트 역에서 내렸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월요일이고 이른 시간여서 인지 줄은 길지 않았다. 내 앞에 열명정도 있었던 듯하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섰다.
첫눈에 든 생각은 '엄청나다'였다. 엄청난 크기의 지하 공간에 거대한 기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물은 약간 깔아 두고 기둥들 사이사이에 조명을 설치해 두어서 마치 미궁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공간의 역할을 찾아보니 지하 저수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을 저장해 두거나, 큰 비가 왔을 때 물을 흘려보내는 역할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이 가득 차면 과거 콘스탄티노플(동로마 제국의 수도) 시절에 3달 동안 이 물로 시민들의 식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더불어 난공불락의 도시를 만드는데 일조했을 듯하다. 과거에 물을 저장해 둘 때는 물고기를 키웠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기둥들 사이로 걸을 수 있도록 철로 만든 격자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서 사진을 찍으며 지하 공간을 구경했다. 지하의 기둥들은 화려한 기둥도 있고 단순한 문양의 기둥도 있었다. 코린트식 기둥을 보면서 굳이 지하에 저런 식의 화려한 기둥을 만든 건 어떤 이유였을까 생각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공간의 기둥들은 당시 여러 지역의 건물 기둥을 가져다가 만든 것이란다. 그것이 이 공간을 구성하는 기둥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였다.
지하 공간을 둘러보고 나오니 사람들이 줄을 서는 끝쪽 공간으로 나왔다. 나와서 보니 지하 공간이 생각보다 더 넓구나 싶었다.
시간은 11시다. 웬만한 곳은 대충 다 둘러본 후라 뭘 할까 하다가 지난번 톱카피 궁전을 둘러볼 때 빼먹었던 아야 이리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톱카피 궁전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해서 아야 이리니 방향으로 걸었다. 티켓을 또 끊어야 한다는 게 아깝지만 별 수 없다. 티켓 요금은 180리라. 생각보다 비싸다. 톱카피 궁전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볼거리가 좀 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본 건물의 실내를 둘러보는 게 전부다. 그것도 안쪽은 공사 때문에 천으로 덮여 있고, 2층은 올라갈 수 없다. 15000원 가까이 입장료를 받았는데 이건 너무한 듯싶다. 보통 이 입장권은 톱카피 궁전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어서 나처럼 별도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번에 시간이 급해서 못 보고 지나친 게 못내 아쉽다.
이곳을 나와서 터키 이슬람 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이곳도 지난번 블루 모스크만 보고 생략했던 곳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이슬람 미술이나 조각이 거의 없어서 이슬람 예술은 좀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톱카피 궁전에서도 미술품은 별로 보지 못했다. 대신 캘리그래피 작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돌마바흐체 궁전은 그래도 그림들이 좀 있었다. 대부분 그림들은 사실적인 사건을 주제로 삼은 것이었다.)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자기, 식기, 촛대, 가구 등등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코란, 카펫, 의류 등등이 약간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 기하학적 문양이나 캘리그래피를 활용해서 장식된 것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이슬람 문화의 한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기하학적 문양들로 구성된 화려함이 볼만 하기는 했다.
여기까지 돌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서 근처 맛집을 찾아 나섰다. 구글 평점은 나쁘지 않았지만, 내 입맛에는 그냥 그랬다. 한국이라면 두 번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이곳 기준이라면 평균은 하는 듯하다. 빵 대신 구운 난을 제공해 줘서 그건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하고 해변가 쪽으로 내려간 후 갈라타 다리를 향해서 해변을 빙 둘러서 걸었다. 이 길을 택한 이유는 이곳 해안에 성벽이 있고, 중간중간 역사적 유적이 조금씩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길의 상당 부분이 공사 중이었다. 심하게 파손된 성벽들을 보완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미 공사가 진행된 구간을 보면 복구하는 편이 더 나아 보이긴 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구간의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이 길을 다시 한번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길을 빙 둘러서 걸으면 끝부분에 귈하네 공원으로 이어진다. 톱카피 궁전에서 바라보았을 때 바다가 바로 보여서 몰랐는데 그 아래쪽은 이렇게 성벽과 공원이 감싸고 있는 구조였다. 지난번 공원을 처음 왔을 때 톱카피 궁전의 반대쪽 방향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왜 그럴까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이 공원 역시 궁전의 한 부분이었을 듯싶다. 공원 한 귀퉁이 튀어나와 있는 8 각형 구조 건물이 술탄이 거리를 바라볼 때 사용되었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을 둘러보는걸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에서 둘러봐야 할 것들은 대략 다 본 듯하다. 남는 시간도 보낼 겸 선물도 살 겸 해서 '그랜드바자르'로 향했다. 트렘을 타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중간에 도자기로 만들어진 냄비받침 몇 개를 샀다. 식탁보로 쓰면 딱일 듯 보이는 자수가 된 천을 보았는데 가격이 비싸서 포기했다. 여기 상품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서 정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부르는 가격이 비싼 건지 싼 건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물건의 가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선 선뜻 물건을 사기가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다. 결국 다른 물건 사는 건 포기하고 냄비받침 몇 개를 가지고 그랜드바자르를 빠져나왔다.
Note. 다음날 저녁 여행 때 가이드가 말하기를 대략 부르는 값에서 절반으로 깎은 후 조금씩 올려가면서 가격 협상을 하면 된다고 했다.
트렘을 타고 숙소 앞 역에서 내렸다.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에 가죽제품 판매점이 있어서 들렀다. 터키가 가죽제품으로 유명하고 또 싸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서 들린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맘에 드는 가죽가방을 하나 구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서 아이쇼핑만 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적당히 마음에 드는 가방을 하나 찾았다. 가격은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당한 가격이다. 여행에서 내 선물을 하나 샀으니 만족이다.
내일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 숙소로 들어가서 뭘 할 건지 고민해 봐야겠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볼건지 아니면 터키의 쇼핑몰을 한번 둘러 볼건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다.
Note. 냄비받침으로 산 타일들을 한국에 돌아와서 나무로 만든 냄비받침대를 사서 시중에서 파는 냄비받침처럼 만들었다. 약간의 수고가 더 들어가긴 했지만 결과물을 꽤 괜찮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돌마바흐체 궁전을 가려고 했는데 조금 늦어져서 호텔에서 9시 30분 정도 길을 나섰다. 하늘은 흐렸다. 빗방울이 살짝 흩뿌리더니 길을 조금 내려가니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내렸다. 잠깐 내리다 말겠지 생각했다.
트렘을 타고 두 코스를 가서 Kabatas 역에서 내렸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있다. 18세기 중반에 재건된 이 건물은 그 이후로 오스만 제국의 후기 황제들과 아타튀르크 시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곳 내부 촬영이 안되어서 외부 사진만 몇 장 찍었다.
이곳에는 18~19세기 까지 유럽 귀족 문화의 최고 걸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르마라 해 바로 옆에 위치한 궁궐 건물 그 자체도 화려했지만, 궁궐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구성품 하나하나가 최고의 사치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원래 이런 식의 화려한 궁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워낙 높은 수준의 가구, 카펫, 샹들리에, 식기 등등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관람 순서는 술탄이 집무를 보았던 공간들을 먼저 돌아보고, 그리고 건물을 나와서 반대편으로 돌아서 왕비와 궁녀들이 거주한 하렘을 보는 순서였다. 하렘은 술탄의 집무 공간보다는 덜 화려했지만,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물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회화 박물관을 들릴까 하다가 궁정 내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봤을 때 딱히 내가 좋아할 만한 그림이 없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나왔다. 배가 고픈 것도 한몫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루멜리 히사르 근처까지 가서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구글맵을 검색하니 버스를 추천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서 40T 버스를 탔다. 버스는 바다를 끼고 30분 정도를 달려서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구글맵에서 추천하는 식당을 찾아가다가 길이 막혀 있어서 10분 정도 돌았다. 내려오는 길에 비가 쏟아진다. 쏟아지는 강도가 높아지더니 우산을 써도 별 소용없을 정도로 거세게 쏟아진다. 루멜리 히사르 입구를 지나서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다. 식당엔 손님들이 가득했다. 혼자라고 했더니 계산대로 쓰고 있던 테이블 한 편으로 안내해 준다. 메뉴판을 건네주고 간단한 메뉴만 주문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토스트 한 접시와 오믈렛 그리고 오렌지 주스 한잔을 시켰다. 신발에 물이 들어가서 양말까지 젖어버리는 바람에 오후 내내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조금 후 음식이 나왔고 기대보다 더 맛있었다. 가장 다행스러운 점은 음식을 다 먹을 때쯤 비가 그쳤다는 것이다.
Note. 트램, 버스, 배 모두 이스탄불 카르트로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대략 10리라 전후 였던 듯 하다.
점심을 먹고 루멜리 히사르에 들어가는 입구로 향했다. 밖에서 보는 성의 모습은 기대한 부풀리게 했다. 거의 온전한 모습의 성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거의 대부분의 공간이 공사 중이었다. 성 안쪽에 있는 계단들을 따라서 가장 높은 곳의 탑까지 갈 수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성벽 너머서 바다 모습이 들어온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이 성벽에서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을 위시한 무역선들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 내부에서 본 바다는 상당히 넓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용된 것처럼 보이는 대포들이 성 안쪽에 주욱 늘어서있다.
계단을 타고 성 꼭데기 타워 아래까지 올라갔다. 타워는 잠겨있었다. 올라가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성벽을 위시한 성의 모든 타워들은 공사 중이었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벽이나 타워를 오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역사를 따라서 이곳에 온 사람으로 과거 이 성벽의 역할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내려오는 길에 성 안쪽에 사진 찍기 좋은 공간에서 셀카를 몇 장 찍는 것으로 루멜리 히사르에 대한 관람을 마쳤다.
내 이스탄불 여행에서 꼭 봐야 할 두 개의 목적을 다 달성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루멜리 히사르.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두 나라의 유물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엔 안타까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흔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던 것에 만족한다.
신발에 물이 들어가서 걷는것이 불편하다. 곧바로 호텔로 돌아가서 재정비 후 다시 나올까 하다가 가는 길에 있는 해군 박물관에 들렀다가 그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해군 박물관은 중세시대보다는 근현대 위주의 전시물들이 많았다. 술탄 시대의 전시물들은 술탄이 이용했던 화려한 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해군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돌아보다가 걷는 게 너무 불편해져서 호텔로 돌아왔다. 젖은 상태의 신발을 오래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길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호텔로 돌아와서 신발을 벗고 발을 씻고 나니 생각보다 상태는 괜찮았다.
한 시간쯤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근처에서 먹을까 하다가 시장 골목을 보고 이것저것 사서 맥주 한잔하고 호텔서 먹거리 했다. 다행히 사 온 음식들은 괜찮았다. 호텔 냉장고가 가득해졌다.
Note. 이날 시장에 가니 사람들이 온통 TV를 둘러쌓고 있었다. 뭔 일인가 싶었나 했더니 다들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거의 우리나라 월드컵 16강 구경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는지 폭죽이 터지고 기쁨에 넘치는 사람들이 시장 골목에서 함성을 내지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갈라타사라이가 이날 우승했다고 한다.
Note. 내가 묶은 호텔은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호텔방에 있는 물도 별도로 요금을 받는다. 아침 뷔페에 음료수를 따르러 가니 시키면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리고 테이블을 보니 음료수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 주변에 시장이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체크아웃 시 계산서를 보니 물을 제외한 별도의 요금은 부과되지 않았다. 아침 뷔페 음료수는 호텔비에 포함되어 있었나 보다.
새벽에 자다가 왼쪽 다리에 쥐가 올라서 깼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서 오른쪽에 왼쪽과 같은 부위에서 쥐가 났다. 살면서 양쪽 모두 쥐가 나는 건 처음이다. 운동하면서도 거의 쥐가 안 나는데 요 근래 더운 날씨에 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고 걸은 것이 좀 무리였나 보다.
어제 호텔에서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 뒀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 후 8시 30분에 호텔 정문을 나섰다. 40분에 신청해 뒀으니 조금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앞에서 어떤 분이 '규나이든'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설마 나한테 하는 얘기인가 했는데 그분이 택시 기사셨다. 택시는 미니밴 형태의 벤츠였다. 좌석도 상당히 편안했다. 전날 예약하면서 일반 택시에 비해서 좀 비싸다 싶었는데 이 정도면 그 비용을 치를만했다.(비용은 40유로였다. 호텔서 공항까지 거리는 40km이다.)
공항에 가는길에 더듬거리는 영어로 터키와 한국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아니라서 그냥 간단하게 몇 마디 묻고 답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기사님은 운전에 집중하고 난 창밖으로 보드룸의 마지막 풍경을 감상했다.
공항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도, 작은 공항이어서 딱히 할 게 없어서 곧바로 탑승 수속을 마쳤다. 공항 안에 들어서니 두 시간 정도가 남았다. 핸드폰으로 팟빵을 들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는 거의 정시에 출발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지난번 지하철을 반대로 타면서 이동했다. 한번 와본 길이라서 별다른 시간 소모 없이 지하철로 이동했다. 거의 다 와서 환승역에서 좀 헤매는 바람에 10분 정도 더 걸렸다. 숙소는 지하철 역에서 10분 거리다. 그런데 야트막한 오르막이다. 지난 두 번의 이스탄불 숙소와는 다른 곳에 잡는다고 잡았는데 앞으로 4일 동안 운동 좀 하게 생겼다. 숙소 근처에 오니 좋은 점도 있다. 호텔 근처가 다 번화가다. 쇼핑이나 음식점, 술집 등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이 점은 괜찮아 보였다. (숙소는 페라 미술관 근처에 있었다)
Note. 이스탄불에 머물면서 세곳에 호텔을 잡았다. 처음 잡은 곳은 아야 소피아 바로 옆에 위치한 곳, 두 번째 호텔은 그랜드바자르 근처, 세번째는 Pera Museum 근처 호텔이었다. 각 호텔의 장점은 처음 호텔은 바로 옆이 이스탄불의 메인 관광지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성비가 좋다는 점, 세 번째 호텔은 주변에 놀거리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첫 번째 호텔 및 주변 식당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점, 두 번째 호텔은 적당히 무난했고, 세 번째는 트램에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4시가 넘었다. 남은 시간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볼까 하다가 후기를 읽어 보니 내일 아침에 가는 게 나을 듯해서 지난번 블루 모스크를 보고 야야 소피아 보는 걸 건너뛰었기 때문에 아야 소피아를 보러가기로 했다. 가는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야 소피아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사람들로 가득하다. 들어가는 입구로 향하는 줄이 200여 미터 가까이 된다. 별수 없이 맨 마지막으로 가서 줄을 섰다. 생각보다 줄은 빠르게 움직였고 20 여분 지나서 아야 소피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들어서서 건물을 바라보자 곧바로 로마의 건축물임을 알 수 있었다. 벽과 기둥의 건축 양식이 이번 여행에서 본 수많은 건축물과 유사하다.
Note. 이날이 일요일 이어선지 아야소피아 근처는 인산인해였다. 조금이나마 한가할 때 보고 싶다면 평일 오전에 조금 일찍 움직이면 된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치와 기둥으로 구성된 건물의 초입 공간이 나타났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본 정교회 성당이 생각났다. 천정에는 황금빛과 문양으로 채워져 있었다. 로마시대 문양인지 아니면 이슬람 시대에 새로 채색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본 어느 성당보다 화려하게 느껴졌다. 이곳 역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다. 신발을 벗고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블루 모스크와 같은 공간이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 느낌이다. 블루모스크가 더 세련된 건 맞지만, 이 공간이 더 마음에 든다. 로마시대 만들어진 기둥들을 차곡차곡 타고 올라간 거대한 돔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만드는 경건한 느낌이 좋다.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 경이롭다. 건물의 모습에서 로마와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거쳐온 흔적들이 보인다. 이곳을 건축한 건축가는 이런 역사를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내부 모습을 보고 걸어 나오는 문쪽으로 동방정교의 그림이 문 위쪽에 남아 있었다. 한 귀퉁이에 이 한 장의 그림을 남겨둔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싶다.
아야 소피아를 나서서 잠시 주변에서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지난번 이 스타일불에 왔을 때 먹어야지 싶었던 고등어 케밥이 생각났다. 트렘을 타고 갈라타 다리 앞에서 내린 후 걸어서 갈라타 다리를 건넜다. 중간에 길에서 파는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다리를 건너서 구글맵에 고등어 케밥을 검색하니 한 곳이 나온다. 유명한 곳이라는 안내문구와 함께 말이다. 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쯤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구두 수선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구둣솔을 떨어뜨리길래 집어서 줬다. 대뜸 한국 얘기를 한참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신발을 구두통 위에 잡아 끈다. 그리고 신발을 깨끗하고 청소하더니 잠시 후 100리라를 주라고 한다. 신발을 청소하고 있을 때쯤 이런 방식으로 먹고 사시는구나 싶어서 50리라쯤 건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게 부르신다. 얼떨결에 100리라를 건네니 또 100리라를 더 달라고 한다. 언성을 높여서 영어로 항의를 했더니 그냥 가라고 손짓한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케밥집으로 향했다.
Note. 고등어 케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방식으로 내 앞에서 또 구둣솔을 누군가 떨어뜨렸다. 웃음이 터졌다. 길에 돌아다니면 이런 식으로 관광객 대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좀 있다. 대부분 갈라타 다리를 건너서 갈라타 타워 쪽이나 케밥집 쪽으로 이동할 때 볼 수 있었다.
10분 정도 걸어서 케밥집에 도착하니 줄이 길게 서있다. 20명 남짓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뒤쪽으로 가 줄에 합류했다. 20~30분 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 다행히 줄에 선 터키 아저씨 한분과 30대로 보이는 터키 부부와 얘기를 나누면서 기다려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올 9월에 한국과 일본으로 3주 일정으로 여행을 온다고 한다. 나랑 같은 나이라고 얘기한 아저씨 한분은 DB관련 일을 했다고 하신다. 음식에 대한 얘기 한국에 대한 얘기 등등을 잠시 나눴다.
한 시간을 걸려서 고등어 케밥을 받아 들었다. 뼈는 잘 발라져 있었다. 고등어는 신선했고 향신료와 소스가 잔뜩 들어갔지만 고등어와 잘 어울렸다. 맛은 괜찮았다. 다시 한 시간 줄을 서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고등어를 이렇게 먹을 수 있구나 정도의 경험으론 괜찮았다.
Note. 이스탄불 여행의 마지막날 저녁에 이곳에 다시 들렀다. 그때 한국인 가이드가 이곳 케밥이 다른 곳 보다 비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곳은 향신료 없이 그냥 고등어만 끼워서 준다고 얘기했다. 다음번에 이스탄불에 가게 되면 일반적인 고등어 케밥도 한번 먹어봐야겠다.
호텔까지 거리가 좀 있었지만, 갈라타 타워를 경유해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왔다. 호텔로 가는 길은 번화가였다. 온갖 종류의 상점들과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저녁을 또 먹기는 뭐해서 호텔 주변 시장 골목에서 먹을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생선튀김과 몇 가지 튀김 요리 그리고 맥주 한 병과 체리 약간을 샀다. 음식들을 안주 삼아서 맥주와 함께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오늘길에 커다란 쓰레기통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구하고 있는 꼬마애 두 명과 함께 있는 여자 한 명을 봤다. 그걸 보는 것 만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100리라를 꺼내어 건네주고 길을 걸었다. 오늘 길에 비슷하게 구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관광객, 사기꾼, 길고양이들 그리고 이런 풍경들이 뒤섞인 모습 그대로의 이스탄불이 마음에 들어온다.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여정이 한번 실패해서 이번에도 또 못 가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싶었다. 가보면 별게 없을지라도 안 가본 곳은 왠지 뭔가 근사한 것이 있을 것 같다. 파묵칼레가 터키의 대표적 여행지 중 하나라는 생각에 더 그렇다.
5시 30분 픽업이라고 해서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3주가 넘게 지나서 시차에 적응이 됐을 거라 생각되지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것 치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직은 한국 시간대를 몸이 기억하고 있나 보다. 5시 15분에 호텔 앞 의자에 앉아서 픽업이 오기를 기다렸다. 45분까지 픽업이 오지 않자 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우처를 보니 내가 속한 지역은 6시 정도에 도착이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6시가 다 될 무렵 픽업 버스(소형버스)가 나타났다. '에페소스' 팻말이 차 유리에 놓여있어서 처음엔 아닌 줄 알았는데 기사분이 이름을 확인하고 맞다고 한다.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기사분은 터프하게 운전하신다. 이렇게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4시간 넘게 파묵칼레 갈 생각을 하니 살짝 걱정이 앞선다.
픽업 버스는 보드룸 시내를 돌려 여행객들을 태우고 시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 외곽에 자리한 새로 만든 버스 터미널 근처의 공터에 멈춰 선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 한분이 다가오더니 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앞에 커다란 버스가 서 있다. 호텔 이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등록 여부를 확인한다. 오케이란 말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이미 손님들로 꽉 차있다. 예상 밖이다. 혼자서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없어서 앞쪽에 젊은 여성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 시간 버스를 뒷좌석에서 타고 싶지는 않아서 별 수 없다. 옆자리 여성은 내 옆에 앉은 젊은 남성과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가족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를 계속 나누고 있다. 말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럴 거면 왜 창쪽에 앉았나 싶다.
Note. 창문 쪽에 앉은 여자는 나중에 결국 나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관광버스에서 신기했던 건 가이드가 네 명이나 탔다는 점이다. 영어, 러시아어 그리고 두 가지 언어로 더 안내를 해 줬었는데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파묵칼레 관광이 유명하긴 한가 보다.
7시가 넘어서 버스는 출발했다. 악사라이에서부터 계속 버스로 여행하다 보니 오늘 여정도 길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알고 나니 버스 여행이 슬슬 힘들어진다.
가는 길에 기억에 남는 건 이날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터널 지나는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터키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버스를 탔건만 처음 터널을 보았기 때문이다. 터키 중앙의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해안으로 이동하려면 1000미터가 넘는 높이를 내려와야 한다. 당연 그 가운데 공간들은 험준한 산들이 채우고 있다. 그런데 이 구간의 도로에 터널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길들이 굽이굽이 산을 돌거나 산의 경사면을 에스자로 타고 내려와야 한다. 이 길을 네 시간 넘게 가야 하니 그 여정이 쉬울 리가 없다.
네 시간이 넘게 걸려서 파묵칼레 근처에 도착했다. 관광버스가 아니랄까 봐 오닉스를 가공하는 공장에 잠시 들린다. 20% 할인쿠폰을 나눠주고 승객들을 내려준다. 나야 딱히 뭘 살게 아니라 잠깐 훑어보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파묵칼레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흐렸다. 가이드가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앞까지 안내해 주고 3시까지 자유시간을 준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입장권과 락커룸키를 건네준다. 안에 들어가 보니 고대 목욕탕에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사람 많은 저 안에 들어가야 싶은 생각이 든다. 사진에서 봤던 하늘빛깔 웅덩이가 층층이 쌓여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굳이 목욕탕 입장권은 살 필요가 없었지 싶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여행사에서 주어준 3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아서 욕탕에 들어가 느긋하게 있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욕탕에서 셀카를 찍을 수도 없다. 주변에 걸어 다니면서 찍는 건 괜찮으니 아마도 이것도 상술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보지는 못했지만 욕탕에서 수영하는 모습의 사진을 판다던지 하는 등으로 말이다. 목욕탕에 있는 사진을 찍으려면 2인 1조가 돼야 한다. 한 사람은 목욕탕에 들어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밖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혼자 온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정면으로 주욱 걸어가면 좌측에 박물관이 있고 그 박물관을 지나서 걸어가면 파묵칼레 사진에서 흔히 등장하는 하늘빛 물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서 이런 모습이 형성된 것인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좀 적은 아침에 왔더라면 이 풍경의 신비함이 더했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풍경을 본 것만으로 만족이다. 지나가는 남자 한 분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관람지는 오던 길에 있던 박물관이다. 그리스 고대 박물관에서 기원전 조각들의 변천사를 주욱 보고 나서인지 2세기 근처의 이곳 조각상이 화려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조각의 화려함을 보면서 이 시기가 로마 문명의 정점이었겠구나 하는 생각과 이런 화려함이 있었다면 빈부 격차 역시 심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제 KOS 섬에서 본 로마시대의 대저택과 겹쳐지면서 말이다. 이 시대의 기둥이 화려한 코린트식 기둥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다음 둘러볼 것은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뒤편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다. 구글지도를 보면 이 주변에 상당히 많은 유적지들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다 둘러보려면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잡아야 할 듯하다. 약속한 세시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난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을 보는 것으로 파묵칼레 일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여러 번의 원형극장을 봐서 처음 봤을 때만큼의 신기함을 없었지만, 지금까지 본 원형극장의 가장 완전한 모습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이 극장의 모습만 봐도 전성기 로마에서 시민으로 사는 삶은 꽤나 만족스러웠을 듯싶다.
원형극장을 마지막으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서 남쪽 게이트로 향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기 전부터 내리던 비는 좀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슬비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내리는 정도이다. 남쪽 게이트를 나와서 마그넷 한 개를 산 후 버스에 올라탔다.
이후의 일정은 별게 없었다. 딱히 맛있다 맛없다를 논하기 애매한 뷔페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고, 그 이후에 쇼핑몰에 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뷔페를 나와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샀는데 꽤 만족했다는 점이다. 너무 달지 않고 새콤한 맛이 첨가되어 있어서 내 입맛엔 딱이었다.
네 시경에 파묵칼레를 떠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구글맵에서 보드룸이 더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더 더디게 느껴졌다. 터키 여행은 추천할만하지만 이 버스 여정은 권하고 싶지 않다. 하루쯤이야 괜찮겠지만, 악사라이부터 거의 3~4번의 경험을 한 나로서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테살로니키에서 소피아, 소피아에서 이스탄불도 똑같이 장시간의 버스 여행이었는데 유독 터키의 도시들 간 이동이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왜일까 싶다.
아침과 동일하게 버스를 갈아타는 곳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공항까지 택시비용을 물어보니 750리라 정도라고 얘기한다. 버스를 타면 반정도는 아낄 수 있겠지만, 지친 상태에서 짐을 끌로 다니면서 버스로 공항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저 정도 금액이라면 내일은 택시로 공항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이 간절해서 생맥주 한잔을 호텔 앞 밤풍경을 보면서 먹었다. 보드룸에서 마지막 저녁이다. 이제 남은 여정은 이스탄불 일정뿐이다.
Note. hotel에 도착해서 내일 아침 픽업을 예약했다. welcome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간편하게 예약하긴 했는데 비용은 호텔 직원이 말한 금액보다 약간 더 비쌌다.
이곳에 와서 보드룸 근처 섬들이 대부분 그리스섬인걸 알았다. 30분 거리 KOS island를 방문하는 일정 때문에 주변 지도를 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Note. 이날 여행은 Viator를 통해서 신청했다. 외국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했을 경우 pick-up 관련해서 한 번은 전화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 영어회화 정도만 해결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 될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Note. 보드룸에서 가까운 섬들은 대부분 그리스 영토이다. 그리스 여행 중 꽤 오랜 기간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고 했었는데 왜 터키에 근접해 있는 섬들이 그리스 영토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의문을 찾아본다는 걸 아직도 실행하지 못했다.
어제 메일로 알려준 픽업 포인트에서 기다리는 소형 버스가 도착해서 항구까지 실어다 준다. 항구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안내하시는 체격 좋으신 남자분 말에 따라서 표를 찾고 출국하는 줄 뒤쪽에 선다. 분위기를 보니 여행사가 해주는 건 여기까진가 보다. 출국 수속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미리 알았다면 굳이 섬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 같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서 선착장으로 나오니 커다란 유람선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크기다. 배를 타기 위해 유람선 옆을 지나니 그 크기가 더 압도적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은다면 한 번은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유람선 옆에 서 있는 배를 타고 KOS섬으로 향했다. 30분 거리의 짧은 항해다. 그 짧은 시간에도 잠시 졸았다. 피곤이 몸 안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숙소의 시끄러운 에어컨 소리에도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자는 걸 봐도 그렇다. 그래서 오늘 섬 여행은 최대한 조금만 보고 휴식시간을 길게 잡기로 생각해 둔다.
KOS 섬에 도착하자 이전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있어서 입국 수속이 한참 걸렸다. 10시 30분 가까이 되어서야 섬 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7시 조금 넘어서 호텔에서 나왔는데 거의 4시간이 걸렸다.
섬 여행은 특별히 뭔가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서 내일 물놀이에 쓸 용품들을 살 수 있는지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출발시간이 호텔 조식시간 이전이라 아침을 거르고 나와서 배가 고팠다. 일단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해변에서 조금 걸으니 그리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식당이 등장했다. 생성요리를 시켰는데 농어(seabass) 요리였다. 맛있었다. 역시 음식은 그리스구나 싶었다. 30분 거리의 섬이지만 확실히 터키 음식과 그리스 음식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점심을 먹고 나서 쇼핑 겸 관광을 함께 했다. 선글라스, 물놀이용 신발 그리고 한참을 헤맨 끝에 래시가드를 샀다. 내일 물놀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요한 준비는 끝난 것 같다.
근처 관광지는 구글맵에 여러 곳이 나오긴 했지만, 대충 내 동선에 포함된 곳만 둘러보았다. 지난 여행에서 웬만한 유적지는 다 둘러본 것 같아서 뭔가를 더 봐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이날 본 유적 중 '까사 로마나'는 기억에 남았다. 로마시대 집 터 중 일부를 복원해 놓은 공간이었다. 로마시대 유력자의 집은 것으로 보인다. 집 규모도 엄청났고 집 안에 장식이나 정원, 중정 공간등이 로마시대의 화려함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거지만 이런 식으로 부분적으로라도 공간을 복원해 두는 게 보는 입장에선 훨씬 더 괜찮았다.
이곳 해안가에도 성이 있었다. 보드룸 성과 같이 문양들이 박혀 있는 걸로 봐서 이곳 역시 몰타기사단의 성이구나 싶었다. 알라니아, 안탈리아, 보드룸, 코스섬까지 항구가 있는 바닷가에는 어김없이 성이 세워져 있는 걸 보면 이 시대에는 항구가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알라니아의 성은 이슬람 시대의 성이기 때문에 건축 방식이 좀 다른 듯 보였고, 보드룸성과 이곳의 해안가 성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진 듯 보였다.
성을 둘러보고 발이 아파서 둘러보는 걸 중단하고 좀 쉬기로 했다. 물집이 잡혀있는 곳을 대충 처리해 두긴 했는데 조금 오래 걸으면 따끔거린다. 래시가드를 사려고 올드타운 근처를 다시 돌았다. 우연히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판매점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적당한 걸로 하나 샀다. 그리고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서 돌고래 조각상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맥주 한 병을 시킨 후 의자에 앉아서 멍하지 바다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었던 듯하다. 돌아가는 배 출발시간이 6시니 한참 시간이 남았다. 내가 시킨 흑맥주 맛이 꽤 맘에 들었는데 이름을 알아오는 걸 깜빡했다. 지난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 여행이 망가진 것에 대한 항의글을 남기면서 맥주 한잔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때만 해도 상당히 지쳐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휴식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4시 근처가 돼서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는 올때와는 다르게 출국심사 줄이 길지 않았다. 출국심사는 금방 끝났다. 면세점을 잠깐 둘러보고 뱃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보드룸으로 돌아가는 손님들로 부두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5시가 넘어서서 천천히 걸어서 배에 올라탔다. 6시가 되어서 배는 보드룸으로 돌아왔다. 갈 때 서 있었던 유람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입국수속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아침에 출발할 때 가이드 분이 내 얼굴을 보고 바로 타고 갈 버스를 안내해 준다.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어떻게 바로바로 알아보는지 신기하다. 버스는 호텔 바로 앞에서 세워주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확인하는 거였다. 캐리어 자물쇠를 항상 잠그고 나가는데 오늘 아침엔 그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별 이상은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중요한 짐을 챙기거나, 소매치기당하지 않으려고 꽤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긴 여행에서 모든 순간을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약간의 행운이다. 다행스럽게 이날의 실수는 별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 Orak Island 투어
호텔에서 나와서 택시를 타고 Royal Istankoy&Hotel Istankoy Boats로 이동했다. 이동한 곳은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는 항구였다. 티켓을 판매하는 곳에 가서 내가 예약한 정보를 물어보니 손짓으로 건너편에 있는 배를 가리킨다.
이날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bodrum까지 왔는데 배를 안 타고 가면 왠지 후회할 듯해서다. 하루짜리 이 여행 코스는 Orak Island를 배로 둘러보면서 중간중간 수영을 하는 코스이다. 수영을 전혀 못하긴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물에 들어갈 준비는 했지만, 막상 배가 멈춰 선 곳들은 수심이 깊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수영을 배워두긴 해야 할 듯싶다.
Note. 내 경우엔 보트 여행을 Viator를 통해서 예약했다. 배는 11시에 출발해서 5~6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위 사진처럼 선착장 앞에는 당일 보트 여행 티켓을 파는 곳이 있다. 내가 가는 날은 성수기는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한가한 편이었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아침에 티켓 판매소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하루 투어 비용은 점심 포함 3만 원 정도였던 듯하다.
바닷물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배를 타고 주변을 도는 코스는 마음에 들었다. 섬 주변의 풍경은 그렇게 예쁘다고 할 순 없었지만, 투명한 바닷물과 그 속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은 된 것 같다. 어차피 호텔에서 하루 휴식을 취할 바에는 이렇게 배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것이 훨씬 나은듯하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 배가 멈추고 나면 수면이 잠잠해진다. 그러면 수면 아래 물고기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서너 종류의 물고기들이 떼 지어 투명한 바닷물 속을 헤엄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물속이 깊어질수록 더 큰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도미처럼 보이는 물고기들도 눈에 띈다. 낚시 좋아하시는 분들은 여기 오면 파라다이스지 싶다. 신기한 건 바닥까지 투명하게 햇살이 비추는데도 불구하고 해초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물이 너무 맑아서가 아닐까 싶긴 하다.
11시에 배가 출발해서 5시가 조금 넘어서 귀환할 때까지 배는 다섯 곳 정도 스폿에 멈췄다. 멈출 때마다 승객들은 수영을 조금씩 했지만, 열심히 수영하는 건 애들뿐이고 어른들은 그냥 잠시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정도였다. 수영을 마치고 나면 배 2층으로 올라가서 대부분 몸을 말린다. 가끔씩 1층으로 내려와 맥주나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손님은 2층이나 배 앞 갑판 위에 있다. 햇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배 주변을 거닐며 사진을 찍거나 물고기를 구경하거나 아니면 앞쪽의 갑판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바다 풍경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니 조금이나마 여행에서 쌓은 피로가 회복된 듯하다. 내일 파묵칼레 일정은 5시 시작이고, 그다음은 이스탄불 귀환 그리고 본격적인 이스탄불 여행을 해야 할 걸 생각하면 오늘의 휴식은 매우 만족스럽다.
보트는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한가한 하루였던 듯하다. 다음번에 이곳에 올 때는 꼭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날 일정은 버스를 타고 보드룸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안탈리아 여행 이후의 일정은 딱히 정해두지 않았는데 이즈미르와 보드룸을 저울질하다가 이곳으로 결정했다. 보드룸은 터키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여름 시즌에는 백만 명 단위로 이곳을 찾는다는 얘기를 택시 기사분에게 들었었다.
호텔에서 나올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비를 맞으면서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출발시간이 남아있어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보드룸 행 버스에 탔다. 온라인 버스표를 자세히 보니 조그마한 글씨로 버스회사가 적혀 있는걸 이때 알았다. 버스표를 발행하는 회사와 운행하는 회사가 달라서 여태껏 애매한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버스가 안탈리아 버스 터미널을 나서자 버스를 이용해서 짐을 부치는 사람과 중간에 택시에서 내려서 버스에 탑승하는 여자가 있어서 출발 시간이 좀 늦어졌다. 도착 시간이 늦어진 걸 보면 이때 늦어진 출발시간이 그대로 지체로 이어진 듯하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서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다. 따로 영어 안내가 없어서 최소한 짧은 시간에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은 뷔페처럼 차려진 음식 중 먹을 음식을 고르면 그만큼 돈을 치르고 먹는 방식이었다. 나중에 출발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25분 내외의 시간이 주어지는 듯하다. 보드룸 근처에 거의 다 와서 정류장 몇 개를 더 거쳤다. 도착 시간이 대략 40분 정도 늦어진 듯하다. 버스가 보드룸에 가까워지자 석양이 지고 있는 바다 풍경이 들어왔다. 그 경치를 바라보니 이곳에 잘 왔구나 싶었다. 계속 바닷가 여행지를 둘러보고 왔지만, 이곳은 확실히 휴양지다 싶은 바닷가 풍경이다.
Note. 보드룸에서 묵은 숙소는 동쪽 방향이어서 이때를 제외하면 석양을 볼 기회는 없었다.
보드룸 지도를 둘러봤을 때 버스터미널은 시내 한 복판에 있었는데, 아직 보드룸 시내에 들어서지 않았는데 버스터미널이 나타난다. New라는 글씨를 봐서 새로 생긴 버스터미널인 모양이다. 시간도 저녁에 가까워졌고, 따로 버스를 알아보기 귀찮아서 택시가 모여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요금을 물어보니 호텔까지 150리라다. 생각보다 저렴하다. 터키 여행을 꽤 했다 싶었는데도 아직 어느 금액이 적정한 택시 요금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보드룸의 흰색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관광지스러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택시를 타고 보드룸 시내를 통과해서 호텔에 도착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살마키스 리조트 & 스파'다. 5성급 호텔인데 만들어진지가 꽤 오래된 호텔이라선지 시설이 낡았다. 호텔의 규모와 위치 서비스 등등은 5성급 호텔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시설은 많이 낡아서 괜찮은 3성급 호텔에 비해서도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묶은 방은 충분히 넓었다. 침대가 세 개나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멋진 테라스가 있었다. 혼자 묶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드룸 지도에서 이 호텔을 검색하면 꽤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도 그렇다.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큰 호텔 규모에 놀랬었다.
이곳에 숙박을 신청한 이유 중 하나는 아침과 저녁 식사를 호텔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끼를 모두 호텔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추가 비용이 있고 어차피 호텔에서 쉬는 날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난 두 끼만 신청했다. 저녁식사는 7시부터 9시 30분 까지다. 늦게 식당에 가면 남아있지 않는 메뉴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메뉴는 남아있었고, 종류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늦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휴양 목적으로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호텔에서 먹고 자고 놀고를 다 하는 호텔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호텔은 딱 그런 목적의 호텔이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간단히 샤워를 했다. 욕실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샤워를 마쳤다. 테라스 앞으로 펼쳐진 밤 풍경을 고려하면 뭐 참을만하다. 솔직히 경치를 제외한다면 가성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경치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닌 걸 생각하면 다음번 여행에서 이곳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다음날 창밖으로 쏟아지는 따가운 아침 햇살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세수하고 해변가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까지는 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쉬었다. 거의 3주간 하루도 안 쉬고 여행지를 돌아다니거나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거나를 했으니 지칠 법도 하다. 하루정도 쉬자고 보드룸으로 왔는데 또 막상 오고 나니 하루종일 호텔에 있거나 바닷가를 보면서 멍 때리고 있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11시가 다 되어서 호텔 방을 나섰다.
내일은 그리스 섬 투어를 예약해 두었고, 3일 후엔 파묵칼레 여행이다. 그 중간에 하루가 비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 구경을 하고 가는 게 어떨까 생각 중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래시가드 하나 구매하려고 생각했다. 짐을 줄이려고 프리다이빙 배울 때 입던 상의를 집에 두고 온 게 아쉽다.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니 수영복 파는 곳 비슷한 곳이 한 곳 보이긴 하다. 남자 수영복이 몇 개 없어서 또 있겠지 하고 걸음을 옮겼는데 결국은 래시가드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수많은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곳을 지나치니 이곳이 휴양지라는 확 느껴진다. 천천히 요트들을 구경하면서 걸음을 옮기니 눈앞에 커다란 성이 나타난다. 보드룸 성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표를 파는 곳이 있다. "Bodrum underwater archaeology Museum"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성 안에 박물관이 있나 보다 했는데 성 곳곳의 공간들에 조금씩 성에 관련된 내용이라던지 5세기 침몰선에서 발견된 유적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성을 보는 것이 이곳의 주요 관람 포인트다.
이 성은 성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 또는 로도스 기사단으로도 불림)에 의해서 지어졌다. 로도스 섬 이외에 셀주크 투르크에 맞서기 위한 요새를 확장하기 위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성은 내가 여행에서 본 유적 중 가장 완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의 고대 유적들을 돌아보면서 고대 로마의 건축술이 얼마큼 뛰어났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1402년에 거대한 바위들을 쌓아서 만든 이 성을 보면서 중세 축성기술 역시 세련됐구나 생각했다. 곳곳에 아치구조를 활용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성을 둘러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두 시간 정도 본 듯하다. 생각보다 넓었고 웬만한 공간을 다 개방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2/3 정도를 보자 목이 말랐다. 물을 들고 온다는 걸 깜빡했다. 갈증을 참으며 나머지 부분들을 둘러본 후 물 한 병을 구매해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 배도 고프고 해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을 움직이기로 했다.
구글맵을 통해서 식당을 검색해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뭔가 구조가 다르다. 어제 버스 이동시 휴게소 풍경하고 비슷하다. 여러 음식들이 한편에 놓여있고 음식을 가리키면 식당 주인이 접시에 덜어주는 구조이다. 눈으로 음식을 훑어보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음식이 없다. 대충 먹을만하겠다 싶은 걸 가리키자 식당 주인이 담아준다. 가지 안쪽에 고기 다진 걸 넣고 찐 것 같은 요리이다. 밥 약간 하고 함께 건네준다. 다른 음식 두어 개를 더 고르고 맥주 한 병을 추가해서 먹었다. 내 입맛엔 음식이 좀 짰다. 추가로 가져온 이름 모를 음식들 역시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일단 허기짐을 가셨다.
Note.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지에 밥을 넣고 쪄서 만든 음식과 같이 다양한 채소로 밥을 감싸서 쪄서 만든 음식들은 터키의 전통음식 중 하나라고 한다.
래시가드를 사려고 주변을 더 돌았지만 구하지 못했다. 남은 오후에 둘러본 곳은 마우솔로스 영묘, 로마 극장, 풍차 이렇게 세 군데였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걸으면서 보게 되는 이곳 마을의 풍경들이 있었다.
마우솔로스 영묘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유물들은 약탈당했고, 건축물 역시 흔적만 남아 있었다. 남아있는 터의 크기와 건축물의 모형을 보면 실재했다면 대단했겠구나 싶었다. 가는 길에 영묘에서 발굴되어 영국 박물관에 있다는 석상 모형을 보았다. 전날 미리 공부해 둬서 알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자리에 예전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마 극장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에 따로 입장료를 받지도 않았다. 유적지 거의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들어가서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로마극장을 자주 보게 되면서 느낀 거지만 극장의 위치는 그 도시에서 매우 괜찮다 싶은 경치를 가진 곳에 지어진 듯하다. 불가리아 프로브디프에 남아 있는 로마 극장이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적이라고 들었는데 이곳 유적 역시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와 해안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멋졌다.
오후에 볼 곳 중 남은 곳은 호텔 근처에 있는 풍차다. 생각보다 오래 걸었던 듯하다. 하지만 중간에 골목길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마을 풍경들이 예뻐서 지루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언덕 위에는 풍차로 사용된 듯한 동그란 건물만 8개 정도 남아 있었다. 풍차의 날개 부분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상태가 안 좋은 걸 보면 딱히 관리하는 유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을 택해서 풍차를 세운듯하다. 풍차보다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예쁘다. 풍차를 좀 손봐서 전망대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풍차 주변을 돌면서 이곳 전망을 감상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은 끝냈다. 호텔에 돌아오니 5시다. 시간이 좀 이르긴 하지만, 쉬는 시간을 늘리면서 지친 몸을 좀 회복시킬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일찍 돌아왔다. 호텔 저녁은 7시 시작이므로 간단하게 씻고 여행기를 적는 것으로 이날 일과를 정리했다.
오늘 예정된 일정은 "MyRealTrip"에서 신청한 파묵칼레 1일 투어다. 정확한 픽업 시간을 알기 위해서 몇 번을 바우처 연락처로 연락해 봤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주말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일단은 바우처에 적힌 데로 6시에 호텔 정문에서 기다렸다. 호텔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시해서 여러 단체 관광객이 묶고 있었는지 전세버스 3대가 순차적으로 출발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탈 버스는 언제 오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이 넘어가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데에서 출발해서 온다고 해도 대략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 30분이 넘어가자 픽업이 올 지 모른다는 기대는 접었다. 파묵칼레까지 거리를 생각하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픽업이 이뤄져서 정상적인 관광이 가능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MyRealTrip"에 관련 문의를 띄워놓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할까 싶었다. 그냥 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어제 가려다가 멀어서 그만둔 알라니아를 떠올렸다. 버스를 검색해 보니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가장 빠르게 출발하는 버스는 9시 20분에 있다. 그렇게 바로 호텔을 나와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튀르키예 버스터미널의 모습은 여러 버스회사(여행사)가 부스를 열어두고 티켓을 판매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버스를 어디서 파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최소한 여행 시점의 나는 그 정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각 부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내가 탈 버스 티켓을 끊을 수 있다. 이전에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들도 어느 플랫폼에서 출발하는지 알려면 여기저기 물어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Note. 보여지는 분위기만 봤을 때는 터키 사람들에게 휴양 도시는 안탈리아 보다는 알라니아가 아닐까 싶었다. 이곳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관광 타운으로 보이는 호텔들이 밀집된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알라니아행 버스표를 끊는 곳을 물어서 알라니아 티켓 한 장을 달라고 했다. 부스에 앉아 있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분이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7이라고 적는다. 7번 플랫폼에서 타라는 얘기인가 싶었다. 그러더니 100리라를 내라는 것이다. 요금이 100리라라는 것은 검색해서 알고 왔기 때문에 요금을 건넸다. 표를 주는 줄 알았더니 대뜸 버스를 가리킨다. 가리키는 데로 버스에 탑승한다. 7번 자리에 앉자 안내원(터키 버스에는 안내원이 있다)이 지나가며 '알라니아'라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7이라고 적혀있는 종이조각을 바라본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다.
버스는 마나브갓 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반정도 거리를 온 건데 이 시간이 걸린 것이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왔는데 어쩌나 싶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마나브갓에서 알라니아까지는 4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약간 더 걸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저녁에 좀 일찍 출발하면 적당한 시간에 안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Note. 터키 여행 중 거리만 보고 버스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예상하는 건 어렵다. 짧다고 생각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와서 우선 점심을 먹기러했다. 아침에 픽업 대기를 하는 통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구글맵으로 적당한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가 보니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왠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가 보니 그 이름의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주인하고 영어로 대화가 안 돼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서빙 보는 친구가 오더니 메뉴를 가져다준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오늘의 생선요리가 눈에 띈다. 여기서 많이 먹는 생선은 뭘까해서 새우요리와 오늘의 생선요리 두 개를 시켰다. 애피타이저로 시킨 새우요리는 감바스 같은 요리였다. 메인으로 나온 요리는 중간정도 크기의 생선 한 마리가 구워서 나오는 요리였다. 서빙 보는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보지 자신도 영어 이름은 모르겠다고 하고서 조금 지나니 핸드폰으로 영어 이름을 알려준다. 그 이름을 검색해 보니 도미다. 아주 큰 도미는 아니지만 한 끼로 먹기엔 적당한 크기였다. 한국에선 도미를 구워서 먹은 적이 있었나 싶었는데 여기서 도미구이를 먹는구나 싶었다. 간이 약간 싱거웠지만 맛은 좋았다. 생선도 신선한 걸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점심을 그렇게 해결하고 걸어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 알라니아 케이블카라고 검색했을 때 난 설악산이나 덕유산 케이블카 정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생각보다 아담한 높이의 케이블카였다. 뭐 다행히 오늘 내가 보고 싶었던 알라이나 캐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고 저기를 어찌 가나 싶었는데 케이블카의 목적지가 그곳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근처 동굴에 들렀다. 입장료 30리라(2000원 정도). 의외로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동굴이 입장하자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이 너무 멋져 보였다. 이런 동굴이라면 멋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자 아래로 사다리가 보였다. 작은 규모의 공연장 같은 공간이었다. 사다리를 내려가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길이 있어서 그곳에 들어가니 웬걸 그 공간이 동굴의 전부다. 빨리 보면 5분 만에 다 볼 수 있는 규모다. 동굴의 모습은 예뻤지만 그럼 그렇지 싶었다. 입장료가 싼 건 다 이유가 있다.
동굴을 나와서 바로 케이블카로 향했다. 표를 끊고 케이블카에 탑승하려고 줄을 서서 승차안내 하는 사람에게 1명이라고 손짓하니 앞으로 나오란다. 가족처럼 보이는 일행과 함께 타라고 손짓한다. 그러자 가족의 가장인 듯 보이는 남성이 케이블카 안내하는 사람에게 언성을 높인다. 케이블카에 타고나서도 그렇게 언성을 높이며 문이 닫힐 때까지 싸운다. 분위기상 가족만 타기로 했는데 불청객을 끼워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내가 뭔 잘못인가 싶었다.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ㅠㅠ. 조용히 있는 내 모습에 앞에 앉은 중학생쯤 보이는 여자아이가 웃는다. 그러더니 가족 모두 금세 시끌벅적 웃는다. 나한테 뭐라고 얘기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나도 씩 웃고 말았다.
케이블카가 연결된 알라니아성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성이다. 그 이전에 보았던 로마시대의 성과는 외형은 비슷하지만 지어진 방식이 달랐다. 성의 두께나 돌을 쌓는 방식 또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요새는 탄약등을 보관하는 용도와 부분적으로 감옥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요새 곳곳에는 발견 당시 사진과 현재 복원된 모습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있었다. 어제 본 로마시대 항구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보존에 더 신경을 쓴 모습이다.
꼭대기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요새를 관람했다. 그리고 거의 정상 부분에 다다르자 요금을 받는 곳이 나온다. 입장료 150리라. 입구에서 약간 고민을 한 뒤 여기까지 와서 10000원 아끼려고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다 싶어서 설혹 볼 것이 없더라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설명은 전부 터키어로 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입장료를 내고서 안에 들어와 보니 성의 꼭대기에 위치한 내성이다. 성은 외곽으로 빙 둘러진 성곽과 그 안에 다시 성곽을 둘러서 건물들을 위치시킨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여기가 그 안쪽 부분이다. 성곽의 모습도 잘 남겨져 있고, 경치 역시 훌륭하다. 다만 내가 절벽과 같은 높은 곳을 워낙 싫어하는지라 깎아지른듯한 성벽에 붙어서 바깥쪽을 촬영하는 건 불가능했다. 경치가 멋져서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요새를 둘러보았다. 더운 날씨에 걷느라 좀 지치기도 했고 다시 세 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했기에 천천히 걸어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내려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버스터미널로 천천히 이동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여기를 둘러보는 내내 이어졌다. 다행이라면 심하게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그냥 맞으면서 걸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점이다. 해변 사진을 몇 장 찍고 좀 더 걸어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안탈리아행 버스표를 구하는 부스에 들어갔다. 지금 안탈리아로 가는 표가 있냐고 물으니 고개를 저으며 옆 부스를 가리켰다. 옆 부스로 가서 안탈리아를 얘기하니 방금 지나온 부스를 가리킨다. 거기서 이쪽으로 보냈다고 얘기하니 6시 버스인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면서 말이다. 선택지가 없으니 난 고개를 끄덕인다. 이날 바로 출발하는 안탈리아행 버스표가 없었던 이유를 한참을 지나서야 추측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처에 빵집을 검색해서 호텔에 돌아가서 먹을 빵을 샀다. 빵값은 저렴하다. 이곳 물가는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떤 건 충분히 싸고 또 어떤 건 너무 비싸고. 아마 관광지 위주로 돌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빵집에서 바클라바를 몇 개 샀다. 나중에 호텔에서 먹어보니 내 입맛엔 많이 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준 표 역시 정상적인 표는 아니었다. 다른 회사 버스표에 내 이름과 좌석번호를 적더니 다른 회사 이름을 지우고 자기 회사 이름을 볼펜으로 적어주며 이걸 타라고 한다. 6시 다 되어서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서 표를 끊어준 사람을 쳐다보니 한참 전부터 서 있던 버스를 가리킨다. 이스탄불행 버스. 행선지에 안탈리아는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곳을 거쳐서 가나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탄 버스들 모두 중간 행선지가 전부 표시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버스에 타서 좌석번호를 찾으니 해당 번호가 없다.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내원이 나를 보더니 표를 달라고 한다. 훑어보고 자신이 들고 있던 손님명단-안내원들은 이런 명단을 다들 들고있다-을 확인하고 자리 하나를 가리킨다. 올 때도 이상했다 싶었는데 이건 분명 이상하다 싶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좌석을 발행하지 않고, 알음알음 비공식적인 통로로 요금을 받아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짧은 거리 손님은 긴 거리 손님들이 이용하지 않고 남겨진 좌석에 배정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뭐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이런 걸 보면 튀르키예는 독특한 나라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도 현대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꼭 필요하다 싶은 곳엔 신호등이 있고, 또 적당히 없는데 선 다들 알아서 길을 건너고, 뭔가 현대적인 시스템인가 싶었는데 그 시스템의 한구석은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도 함께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모든 걸 적당히 맞춰가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커다란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 때문일까. 한국처럼 거의 통일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국가에서 길들여져서 보이는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도 살짝 겹쳐서 보이긴 하다.
버스는 거의 시간에 맞춰서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버스 옆자리 승객이 계속 TV로 대선 개표현황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이 대선 투표의 결선 투표가 있는 날인걸 알 수 있었다. 흘낏 보는 정보로 대략 누가 이겼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옆자리 젊은 승객은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안탈리아에 들어오고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귓가에 차량에서 울리는 경적소리가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교통정체가 시작된다. 경적소리의 정체는 시간이 가면서 알 수 있었다. 선거 결과가 거의 확정된 모양이다. 거리엔 터키 국기와 정당 깃발, 에르도안의 얼굴을 흔들면서 지나가는 차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시내의 중심가를 버스가 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분위기와 유사하다. 이 지역이 누구를 더 지지하느냐를 떠나서 선거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것은 좀 신기하다. 터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는 30분 정도 더 늦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긴 하루 여행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