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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20. 13:15

캔디안 댄스는 이곳 캔디에선 꽤 유명한 관광 코스라고 한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캔디안 댄스는 캔디 지역의 전통 무용을 포함해 스리랑카 각 지역의 유명한 전통 무용을 한꺼번에 모아둔 공연이란다. 공연장은 불치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는길에 차민다네 집에 다시 들러서 어제 우리와 동행했던 오사장님이 합류한다. 성희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다가 사귄 현지인 친구와 잠시 통화를 하고 공연장 입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공연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 딜루샤가 도착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이곳 교통사정 탓에 한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여자 혼자서 밤늦게 돌아다니는걸 매우 꺼려하기 때문에 딜루샤가 그냥 가려는걸 성희가 붙잡아서 함께 공연장에 들어섰다. 공연장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희는 딜루샤와 한참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덕분에 나는 오사장님의 이야기 파트너가 되었다. 공연 시작전에 앞 좌석에 스님 두분이 자리했는데 한국에서 오신 분이란다. 스리랑카에선 다른 여행지와는 다르게 한국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성희와 친분이 있는 한국인들을 제외하면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을 본 듯 하다. 캔디의 불교 유적지에 대해서 성희가 스님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있으려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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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형태의 북을 든 사람들의 등장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장고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북도 있었고, 전반적인 느낌이 우리네 사물놀이의 가락과 흡사한 듯 했다. 그렇게 북을 주제로한 첫번째 공연이 끝나고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전통춤이 무대에 펼쳐진다. 이곳 춤은 인도의 조각상들 처럼 손과 발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키면서 진행된다. 딜루샤가 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건 거의 없다. 아마 공연되는 춤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던 것 같다. 하나 기억에 남는건 춤을 추는 내내 동작을 절대로 끊기지 않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춤을 배우기가 쉽잖단다. 그렇게 각 지역별 춤들이 다양한 의상과 함께 이어진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기에 담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공연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등장한 다양한 차림의 무희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막이 내렸다. 춤이 끝나고 다음 공연은 불쇼라고 한다. 전통 춤 공연 뒤에 웬 불쇼인가 싶지만, 불쇼 관람을 위해서 무대 앞쪽 공간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관객을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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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쇼는 앞쪽의 전통중에 비하면 그저 단순한 볼거리 정도이다. 까무잡잡한 두사람이 공연에 앞서서 간단한 기도를 드린다. 준비해온 쇠꼬챙이에 불을 붙여서 쇼를 시작한다. 진행은 TV에서 보는 여타 공연과 별반 다를게 없다. 특이하다면 여기선 식물성(코코넛 기름?) 기름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일까. 바로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져서 뜨거운 열기가 후끈하게 전해진다. 전통춤 공연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음 더 좋았을텐데..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어둑한 캔디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딜루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급하게 서두른다. 우리 일행은 바자지 타는곳까지 딜루샤와 동행한다. 불치사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까마귀 배설물이 떨어지는 소리다. 캔디에 오래 거주하면서 까마귀 배설물을 한번도 맞지 않기란 불가능하단다. 다행히 오늘은 일행중 누구도 피해자가 없었다. 딜루샤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바자지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앞서 말한것처럼 여기선 여자 혼자서 밤늦게 돌아다느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스리랑카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회란다. 그래서 여자들이 일상적인 활동반경을 벗어나서 어딘가를 가거나 하는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밤늦게 다니는 것도 가족과의 동행이 아니면 좀체 없는 일이란다. 문화적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웬지 이런 문화적인 관습은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딜루샤를 보내고 성희, 나 그리고 오사장님은 저녁을 먹기위해 온길을 거슬러 식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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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여전히 요란하다. 운이 좋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식당에 들어서자 올라가는 벽면에 주욱 흑백사진들이 걸려있다. 캔디의 역사에 관한 사진을 벽면에 장식해 두었다고 성희가 설명해준다. 식당안에는 손님이 없다. 나무 탁자와 의자들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메뉴판을 들고 적당히 이것저것 섞어서 음식을 시킨다. 오사장님과 나는 맥주 한병씩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올때까지 오사장님이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꽤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지금은 경기도 어딘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시단다. 이번에 스리랑카에 온건 뭔가 사업을 할만한게 있을까 해서라고 한다. 오사장님 얘기는 음식이 나온 후에도 한참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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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가격이 저렴해 보여서 한병 시켰다. 10달러 정도였던 듯 하다. 포도주를 두어잔쯤 더 먹은 것 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서 먹은 술이 나를 몇일동안 곤란에 빠뜨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고 오사장님은 차민다네 집으로 향했고, 나와 성희 역시 바자지를 잡아타고 성희네 집으로 향했다.
캔디에서의 첫번째 하루는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 한가지 일이 더 남아있었다. 저녁에 홍콩에서 1박을 보낸 내 짐이 도착하기러 한걸 깜빡했다. 공항 담당자가 9시쯤 가져다 주겠다고 했는데 성희네 집이 찾기가 어려웠는지 거의 12시가 넘어서야 짐이 도착했다. 한참을 어렵게 길을 설명해서 성희네 집 앞에 내 가방이 도착했다. 가방안에 짐들은 모두 제대로 들어있다.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서 성희가 기다리던 과자며 커피등을 꺼낸다. 내가 필요로한 고추장이며 김, 모기약 등등도 꺼낸다. 기분좋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2007. 3. 19. 13:28

시차 탓인지 바뀐 환경탓인지 이틀에 걸친 피곤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기를 몇번쯤일까 아래층의 부산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한국 시간으로 맞춰진 카메라를 켜서 시간을 확인한다. 한국이라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여긴 아직 새벽이다. 다시 잠을 청한다. 다시 아래층의 소란스러움에 눈을 뜬다. 어슴푸레 주변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약간 넘었다. 한국 시간으로 하면 아홉시쯤일까..

얼마쯤 그렇게 자는듯 마는듯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한참 지나니 성희가 일어난다. 그리고는 간단한 아침준비.. 어제 무리한 탓도 있고 아직 이곳 기후에 적응이 안된것도 있고 해서 입안이 까끌하다. 북어국과 김치, 간단한 달걀요리 그리고 밥으로 성희가 아침을 준비한다. 성희가 미리 음식에 대해서 몇마디 경고를 덧붙인다. 아주 음식을 싱겁게 먹기때문에 크게 맛은 기대하지 말라고..^^ 나도 싱겁게 먹는 편이긴 하지만 음식이 좀 싱겁긴 하다. 입맛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충분히 먹었다. 여행할때는 체력이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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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크림을 잔뜩 바르고 집을 나섰다. 성희네 집에서 버스 타는곳 까지는 10여분을 걸어야 한다. 스리랑카 거리는 지저분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렇게 지저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어릴적 한국의 모습을 떠올려서 그랬을까. 10여분쯤 걸어서 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나왔다. 곧바로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사람들이 신기한 듯 우릴 쳐다본다.

오늘의 여정은 볼태니컬 가든이라는 식물원이다. 시내의 버스 터미널에서 이쪽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스리랑카의 길거리 풍경은 어디든 비슷해 보인다. 가끔씩 눈에 띄는 흰옷입은 여학생들의 모습과 흰색상의와 파란색 바지를 입은 남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버스를 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버스 앞쪽에 요란스럽게 펼쳐진 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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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태니컬 가든으로 가는 버스안 풍경

버스 기사의 종교적 취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로 치장이 되어 있다. 버스에는 운전수와 차장이 함께 탄다. 내가 어릴적이 보았던 버스의 풍경을 어렴풋하게 기억나게 한다. 버스가 낡아서 버스역시 그때쯤 만들어 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장이 우리쪽으로 와서 표를 끊는다. 요금 계산은 주로 성희가 했기 때문에 정확한 운임은 모르겠다. 단지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느낌 정도뿐. 내가 스리랑카에 가기 얼마에 버스 폭탄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건 약간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볼태니컬 가든의 첫 느낌은 여느 공원과 같았다. 성희가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다. 이곳 역시 외국인과 현지인 가격이 다르다. 물론 난 현지인 가격이다. 가이드를 제대로 둔 덕에 말이다. 성희가 지도를 한장 건넨다. 볼태니컬 가든의 지도란다. 몇번 여기에 와봤기 때문에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성희는 한번도 식물원 전체를 다 돌아본적이 없단다. 언제나 입구 근처만 빙빙 돌다가 갔다고 한다. 지도를 대충 훑어보니 그럴만 하다. 오늘안에 다 돌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와서 스리랑카에 볼것이 뭐가 있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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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불교 문화유적도 많고 다채로운 자연 풍경도 많다는 얘기해 주지만, 가장 첫번째로 떠오르는 곳은 이곳 식물원이다.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곳의 첫자리 역시 이곳이다. 그렇게 많은 식물원을 본건 아니지만, 이곳은 내가 본 식물원중 단연코 최고다. 다른 식물원과 비교조차 하기 힘든 차이로 말이다.

식물원 입구에 들어서면 둥그런 화단이 눈에 들어온다. 화단 옆에 소가 끄는 마차가 놓여있다.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서있는 듯 하다. 지도를 펼쳐든다. 한참을 들여다본 후 대략의 이동 경로를 정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코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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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에 붙어있는 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엄청난 높이의 나무다. 이곳이 열대라는걸 실감하게 해주는건 야자나무나 바나나 나무같은 열대성 나무들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그 느낌을 확실하게 해준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높이나 폭을 자랑하는 나무들을 여기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다. 그런 이유등등으로 숲이나 나무에 대한 보전이 꽤 잘되어 있다고 한다. 큰 나무를 자를때는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거의 불가능 하다고 들은 듯 하다. 그래서 이곳 식물원 만큼은 아니지만 어딜가도 울창한 숲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식물원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나무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처음 우리가 정한 코스는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그냥 보이는 길을 따라서 흘러다니다 보니 정자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쉴곳이 눈에 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한지 몇시간이 안되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아마 이곳의 기후가 더워서 체력 소모가 빠른 탓인 모양이다. 준비해온 바나나와 캐슈넛으로 허기를 달랜다. 정자안에는 커플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이 데이트 코스로 나쁘지 않을 탓도 있겠지만, 남녀간의 교제가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서로 곤란해 지기 때문에 이렇게 한적한 장소에서 데이트를 즐긴다고 한다. 성희 얘기론 이곳에선 애인 사이로 소문이 나면 거의 결혼까지 가야 한단다. 여자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렇게 남의 눈이 많지 않은 장소가 데이트 코스로 선택된다고 한다.

간단하게 요기를 마친후, 지도를 펼쳐든다. 처음 예상한 코스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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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를 대충 머릿속으로 그린후 다시 출발한다. 얼마쯤 걷자 눈앞에 대나무 숲과 커다란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대나무는 마치 한 가족이라도 되는듯 커다란 대나무 묶음 형태로 자란다. 그런 묶음 단위의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날씨 탓일까 아니면 본래 저렇게 자라는 종일까? 연못을 끼고 돌아서 숲으로 나 있는 가느다란 길로 접어든다. 나무들마다 다들 자신만의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파란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햇살을 받아서 숲길을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숲속으로 난 길을 100미터쯤 걷다보면 알로에처럼 생긴 식물들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나 다른 열대 식물처럼 커다랗다. 그 커다란 잎사귀 마다 사람들 이름이 쓰여 있는게 안타깞다. 어딜가나 이런걸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있나보다. 성희역시 그걸 보더니 한참을 투덜거린다.

조금더 옆에는 이상한 형태로 가지를 땅속에 뿌리처럼 내린 나무들이 서있다. 나중에 홍콩에 갔을때도 이런 나무를 본것 같다. 아마도 열대지역에서 서식하는 나무의 종류인 모양이다. 후에 함반토따에서 강을 따라서 관광을 기회가 있었는대 그때 강 주변에 이 나무들이 가득 서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식물원을 첫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탓에 후에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좀 더 그 지역의 식물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스리랑카를 여행할 생각이라면 나처럼 식물원부터 여행의 시작을 잡는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그렇게 특이하게 생긴 나무들을 끼고 길을 돌아서니 스리랑카에서 자라는 약초들과 수생 식물들을 전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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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한의사 분들이 이곳에 오셨을때 이곳 약초를 전시하는 곳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약초에 대해서는 나는 거의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에 잠깐 둘러보는 것에 만족한다. 성희는 예쁜 꽃이 등장할때마다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햇살이 따갑다. 길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가득하다. 어딜 둘러봐도 처음 보는 꽃에 나무들 뿐이다. 한곳에서 이렇게 많은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아까 지나온 연못을 지나서 볼태니컬 가든의 좌측면을 따라서 이동한다. 성희가 매번 등장하는 새로운 꽃마다 사진을 찍느라 우리의 이동속도는 느리기 그지없다. 아까 정문에서 본 소가 끄는 마차가 외국인 관광객을 싣고 지나간다. 식물원에서 그냥 저렇게 휙하니 풍경만 보고 지나가는게 조금은 이상하게도 느껴진다. 그렇게 한참 사진기하고 씨름하기를 잠시 탁트인 잔디밭이 펼쳐진다. 잔디밭 우측길에는 전나무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런데 그 서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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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나무들이 춤을 추듯이 서있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거지? 그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 몇컷을 추가한다. 거의 정오쯤 된 듯 하다. 햇살은 더 없이 강렬하다. 이곳에서 한낮에 돌아다니는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지금 겨울인데 말이다.

우아하게 굽어진 나무들을 지나쳤다. 다양한 나무들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서있따. 책에서만 봤던 빵나무도 있다. 나무 열매가 빵처럼 생긴걸로 보아서 열매의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모양이다. 빵나무를 지나쳐서 조금더 가니 사람 두명정도가 간신히 지날듯한 철교가 하나 보인다. 지도를 펼쳐보니 한쪽면의 끝에 도착한 셈이다. 대략 공원의 1/3 정도를 본 셈이다. 벌써 정오가 넘었는데 말이다. 철교를 좌측으로 끼고 돌아서니 야자수들이 주욱 늘어선 길이 보인다. 어떤 야자수 나무는 다른 야자수의 거의 두배 높이다. 열대에서 자라는 야자수라는걸 강조하기라도 한듯한 모양새다. 야자수 길을 배경삼이 사진을 몇컷 더 찍고나서 점심을 먹기위해 공원 중앙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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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공원을 돌아다니는건 아무리 1월이라도 쉽지 않다. 다행인것은 그늘에 들어가면 적당히 버틸만하다는 것이다. 끈적한 감은 없지만 그래도 더운것만은 사실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현지인은 거의 이곳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0만원 남짓인 월급으로 이곳에 오는건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식탁에 앉아서 간단한 요리를 시킨다. 스푼과 포크가 세팅된다. 성희가 스푼과 포크를 씯어오라고 한다. 이곳의 위생상태를 생각해서 한 말이다. 종업원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저와 포크를 들고 세면대에서 씻어온다. 한국만큼 바로 음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십여분 기다리느 음식이 도착한다. 닭고기 요리에 고추 볶음과 감자 튀김이 가득 접시에 담겨 나온다. 감자 튀김은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꽤 남겼지만, 나머지 음식은 나쁘지 않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후다닥 접시의 음식을 비워가기 시작한다. 잠깐 사이에 접시의 음식은 사라지고 배고픔 역시 함께 사라진다. 음식을 다 먹을때쯤 귀엽게 생긴 두 아이를 데리고 인도쪽 사람으로 보이는 가족이 식당에 들어온다. 성희가 몇마디 말을 건네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 예쁜 애들이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점심을 먹고 공원의 나머지 절반을 보기 위해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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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내내 공원을 걸은 탓인지 좀 피곤하다. 피곤함과 저녁 일정을 생각해서 나머지 관람은 간략하게 보기러 하고 식당을 출발했다. 군데 군데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멋지게 어우러진 길들과 야자수 길들을 지나 난초 전시관에 다다랐다. 식물원에 있는 나무들에 비교하면 전시관은 규모가 작은 온실 수준이다. 앞쪽에 감시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있다. 특별히 이곳에만 있는걸로 보아서 난을 회손하거나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한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약간 후끈한 느낌이 날 맞아선다. 화분들이 곳곳에 걸려 있는 허름한 분위기의 전시관이지만, 그곳에 피어있는 열대 난의 꽃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각각의 난초에서 피어난 꽃들은 다양한 색상과 모습으로 열대 식물 특유의 화사함을 뽐내고 있다.

난 전시관을 나올때쯤 나는 꽤나 지쳐있었다. 바로 앞에는 Japanese garden이란 명칭의 정원이 펼쳐져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스리랑카에게 있어서 일본은 꽤나 중요한 나라다. 스리랑카 국가 재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해외 원조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처럼 웬만한 식물원에는 Japanese garden이란 명칭이 존재한다. 일본의 정원과는 꽤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미 꽤 지친 나는 대충 이곳을 지나쳐서 앞쪽에 보이는 양치식물들로 구성된 정원으로 향한다. 거기서 약간 쉬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갑자가 성희의 외침이 들린다. 돌아보니 투덜거리며 성희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인도 여행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역시 약간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난 몇일간의 여행으로 지쳐있던 나는 솔직히 약간은 안도감 또한 없지 않았다. 그리고도 성희가 한참은 더 투덜거렸던 듯 하다. 어렵게 어렵게 해서 잡은 여행일정이니 만큼 그 아쉬움이 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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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난초 꽃들..


그렇게 조금 더 식물원을 돌다가 입구쪽으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 매점에 들러서 음료수 두어병을 사먹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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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가격때문에 포기했다. 이곳 가격이라봐야 한국에 비하면 무척 싼 수준에는 틀림없지만, 1년 반 가까이 이곳 생활을 한 성희의 기준에는 턱없이 높은 가격이었나 보다. 매점을 뒤로하고 좀더 걸어서 입구 근처의 나무 벤치에 앉았다. 커다란 나무를 사람이 앉을 곳만 깍아서 팩맨 형태로 만든 벤치가 독특하다. 가방에서 물과 약간 남은 바나나를 꺼내 마져 먹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공원을 나섰다. 이미 꽤 지친 탓에 툭툭을 이용하자는 제안은 곧바로 기각되고(^^)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아침에 출발한 장소 근처로 다시 우릴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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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서 캔디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뷰포인트로 향한다. 바자지를 이용했는데 운전기사가 뷰포인트를 지나서 가버리는 바람에 내려서 온길을 약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이곳에서는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란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타기 전에 협상한 가격보다 더 많은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 등등도 많다고 한다. 뷰포인트에 올라서니 첫날 이곳에 도착할 때 본 인공호수와 불치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날 풍경에 대한 첫느낌이 강렬했던 탓인지 감흥은 좀 덜하다. 잠깐 그곳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길을 따라 내려간다. 성희가 자주 가는 경치 좋은 찻집이 있는 곳을 향해서.. 성희가 말한데로 찻집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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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서 차한잔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분위기와 음식에 비하면 가격은 무척 저렴하다. 저녁에 캔디안댄스를 보러 가기러 했는데 시간에 좀 여유가 있다.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기로 하고 오랜만에 한적함을 즐겨본다.



 

2007. 3. 1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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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고아원 앞 은행 풍경

코끼리 고아원앞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그냥 작은 시골 마을 입구같은 곳이다. 고아원 앞에 있는 허름한 2층 건물에 위치한 은행만이 이곳이 관광지임을 알수 있게 해주는 듯 하다. 입구는 무척 한산하다. 스리랑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개들만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입장시간인 안된탓인지 매표소엔 사람이 없다. 성희가 표를 끊어오겠다고 한다. 내가 표값을 지불하겠다고 호기를 부려보고 싶지만 지갑에는 한국에서 환전해온 달러가 전부다. 성희가 입장 요금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현지인 가격과 외국인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성희의 경우엔 레지던스 비자가 있어서 현지인 가격으로 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올껄 대비해서 다른 KOICA 대원은 레지던스 비자를 빌려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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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 나도 현지인 가격으로 표를 끊을 수 있었다. 현지인 입장 가격은 50 링깃이다. 놀랍게도 외국인 입장료는 1000 링깃이다. 거기다가 비디오 촬영을 하려면 돈을 더내야 한단다. 한사장님 일행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현지인 가격으로 표를 구해서 공원 정문을 통과했다.

정문을 통과해서 조금 들어가니 우측에 레스토랑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간단한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성희가 이곳에서는 코끼리 응가(^^)로 만든 종이를 판다고 얘기한다. 꽤 질이 좋다는 얘기도 덧붙였던듯 하다. 레스토랑을 통과해서 저편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보인다. 그렇게 언덕이 보이는 방향으로 100미터쯤 걸었을까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들이 가득 눈에 들어온다. 조그마한 새끼코끼리 부터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코끼리가 먹을 나뭇잎을 나르고 있는 짐꾼 코끼리까지 수십마리가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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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은 운전하고 온 차민다네 직원 (탁월한 운전실력의 보유자^^)

그 중간중간에 코끼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눈에띈다. 관광객이 보이자 연신 코끼리 옆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한다. 성희 얘기로는 이렇게해서 사진을 찍고나면 돈을 요구한단다. 우리들 일행은 잠시 코끼리와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다른 외국인들도 속속 입장한다. 코끼리를 제외하면 별 볼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다. 이곳은 스리랑카 관광 코스에 자주 포함되는 코스중 하나란다.

점심때가 가까워선지 햇살이 따갑다. 평소에도 햇볕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터라 나무 그늘로 몸을 피한다. 햇살이 따갑게 내려쬐는 곳에서 관광객의 볼거리를 위해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들의 모습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아기코끼리의 귀여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코끼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다들 장소를 이동하자고 한다. 나역시 햇살을 피할 그늘을 찾기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오던길을 다시 조금 걸어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코끼리 막사가 있다. 막사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코끼리 똥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십여분 막사를 청소한다. 이곳에서는 코끼리 수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얼마쯤 지나니 사육사가 약간 자란 아기코끼리 두마리를 끌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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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 중앙에 위치한 막대기에 코끼리 다리와 연결된 쇠사슬을 매어둔다. 막사 주변에는 어느새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빙둘러 자리하고 있다. 코끼리 수유 장면은 특별한게 없다. 커다란 우유병으로 아기 코끼리에게 우유를 먹이는게 전부다. 가까이서 코끼리 우유 먹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는 것 정도에 만족해야 할 듯 하다.

코끼리 고아원을 나서서 캔디로 가는길에 다시 접어들었다. 가는길에 차민다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른다고 한다. 이곳 도로는 워낙 구불구불하다 보니 내 방향감각이 전혀 쓸모가 없다. 도대체 난 어디쯤 있는걸까. 차창밖에는 끝없이 녹색으로 펼쳐진 숲들뿐이다. 녹색으로 이어진 열대 나무들의 모습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정오가 가까워선지 차안은 약간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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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한참을 달린끝에 허름한 건설장비들이 놓여있는 곳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30년은 넘어보이는 일제 건설장비가 놓여있다. 마당 앞쪽으로 보이는 도로 건너편엔 대나무들이 한묶음으로 자라서 커다란 나무처럼 보인다. 이곳은 차민다와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라고 한다. 한사장님과 같이온 오사장님이 혀를 끌끌찬다. 어떻게 이런 장비를 팔겠다고 수입한건지 모르겠다면서. 오사장님은 과거에 중장비쪽 일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허름한 중장비를 직접 일본에서 사들여온 현지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오사장님이 이런 계통은 어느정도 아신다면서 그 현지인에게 나중에 한국에 오면 들리라고 얘기를 전한다. 이곳에서는 이런 장비들도 심심찮게 쓰인다고 한다. 새벽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느낀거지만, 차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서 느끼는 매연은 한국보다 더하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쓰이던 폐차 직전의 중고차들이 수입되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장비들 역시 그런 중고품중 하나이다. 웬지 중고품 폐기장소로 스리랑카가 택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일본은 스리랑카에 무상 및 유상 원조를 가장 많이하는 나라이다. 이나라 입장에선 엄청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더불어서 이런 폐기 직전의 장비까지 같이 흘러들어 온다는건 어찌 생각해야 할까!

중고 중장비 가계 주인이 건네준 음료수 한병을 마시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차는 또 어딘가로 향한다.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한참을 달려 녹색 풍경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본것중 가장 큰(?) 도시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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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여기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캔디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였다는걸 제외하면 말이다.  차민다가 운영하는 가게로 보이는 곳에 차가 주차한다. 'Zeropia Computers'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안에 들어서니 중고 PC 모니터 및 본체가 주욱 쌓여있다. 이곳이 창고인 듯 하다. 잠깐 그곳에 있다가 근처에 위치한 또다른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직원들이 많은것으로 보아 이곳이 컴퓨터를 판매하는 곳인가 보다. 사장실로 보이는 곳에서 한사장님과 차민다 그리고 그쪽 사장인듯한 사람이 얘기를 나눈다. 성희는 예정에 없던 밤샘으로 무척 피곤한듯 의자에 몸을 기대어 있다.

스리랑카에서 첫번째 화장실 이용은 이 건물에서 였다. 직원에게 물어서 건물 안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깨끗하다. 수세식 변기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수도꼭지가 위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화장지가 눈에띄지 않는다. 속으로 이곳 화장실 인심은 야박한가 보구나 생각한다. 다시 밖으러 나와 직원에게 화장지가 없다고 얘기한다. 사무실에서 비서쯤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미소를 띄더니 사장실로 들어가서 뭐라고 얘기한다. '화장지 하나 달라고 했는데 왜 저러는거지' 속으로 갸우뚱하게 생각한다. 여직원이 밖으로 나가려는건 성희가 막아서고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성희가 이곳에선 원래 화장지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얘기해준다. 그래서 꼭 화장지를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성희가 근처 잡화점에서 화장지를 사오는 것으로 첫번째 화장실 이용기는 일단락 되었다.

이곳에서 출발한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태양에서 내리쬐는 햇살의 강도는 아침보다 한층 거세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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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가는길에 원기 회복용 빠빠야(한사장님, 오사장님, 차민다 와 직원)

거기에 배고픔과 피곤함 역시 계속해서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캔디로 가는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캔디로 가는길 주변은 나무들이 빽빽한 산길이었다. 도로 보수 공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런 도로의 느낌은 내가 가는곳이 정말 도시인가 하는것을 의심케할 정도다. 그런길을 한참을 달리니 길 주변에 제법 많은 건물들이 보인다. 콘크리트 벽에 그냥 슬레트 지붕만 얹어놓은 집들. 그렇게 허름한 건물들이 도로 양편으로 주욱 늘어서 있다. 도로는 차들로 가득하다. 차들마다 매연을 한웅큼씩 쏟아놓는다. 캔디에 도착했나 보다. 한참전부터 목이 아팠는데 캔디에 접어드니 더욱 심해지는것 같다. 이름을 알수없는 좁다란 골목을 돌아돌아서 차는 어느 주차장에 멈춰선다. 중국 식당이다. 성희가 이곳 음식이 괜찮아서 한국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얘기한다.

음식을 먹기전 화장실에 들러서 세수를 한다. 손도 새까맣 얼굴도 새까맣다. 이곳까지 와서 서울보다 많은 매연에 시달리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식당 2층에 올라서니 전망이 그림같다. 피로가 잠시 한켠으로 비켜선다. 앞쪽으로 산으로 둘러쌓인 인공호수가 펼쳐저 있다. 인공호수를 배경으로 2층 난간에 기대어 포즈를 취해본다. 찰~칵. 배가 고픈탓도 있었겠지만 이곳 음식은 성희 말대로 무척 맛있었다. 느끼한 맛도 없고 약간 매우면서도 크게 짜지 않아서 좋았다. 이곳 쌀로 만든 밥 역시 괜찮았다. 고추장 생각이 안나는걸 보면 음식에 대한 걱정은 어느정도 접어도 될 듯 하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킨 메뉴에 카카오(?)로 만든 술을 한잔정도 가볍게 마시고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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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식당 2층 난간에서

식당을 나와서 밴의 마지막 목적지인 차밍다네 집에 도착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한사장님과 오사장님은 근처 호텔로가는 트리밀러에 올라탔다. 트리밀러는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듯한 3륜차다. 현지어로는 '바자지'라고 부르는데 보통은 그냥 '툭툭'으로 불리운다. 나와 성희역시 바자지에 올라탔다. 가격으로 한참 실랑이를 했다. 성희는 외국인에게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바자지 운전사에게 화가나있다. 평소보다 비싸게 불렀다는 것이다. 피곤함에 대충 협상을 마무리하고 바자지 두대가 지나가기도 좁은 골목길을 한참 달려간다. 길 곳곳에 포장이 패어있어서 바자지는 덜컹거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십여분쯤 갔을까 바자지가 멈춘다. 성희가 묶고 있는 집에 도착한 것이다. 주인집 사람들로 보이는 몇몇이서 마당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성희가 주인집 사람들과 사이가 안좋다고 해서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왔다. 피아노와 주방 탁자가 놓여있는 거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고온 짐들을 대충 풀어서 문옆에 위치한 의자 한귀퉁이에 쌓아놓는다. 성희가 매트리스며 간단한 덮을것들을 거실로 내온다. 드디어 캔디에 도착했다. 이제 씻을수 있다. 그리고 잘 수 있다.

저녁때쯤 성희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성희가 뭐라고 통화를 한다. 그리고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 짐을 내일 저녁때쯤 캔디로 배달해 주겠다는 것이다. 아직 도착한건 아니지만 한시름 놓인다. 오늘 저녁은 정말 맘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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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가 사는 집 거실 풍경(사진은 실물보다 아름답다.^^)

2007. 3. 14. 00:48

드디어 길고 길었던 첫번째 하루가 지났다. 집에서 공항에 가기 위해 떠난게 6시 였고, 콜롬보에 도착한게 밤 12시 거기에 3시간 30분의 시차를 더하면 거의 22시간 가까이 여행을 한 셈이다. 여기 오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한두시간 후면 성희가 살고있는 캔디 어딘가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것으로 믿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이 깨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대로 인사도 못한채로 공항 입구에서 바로 밴에 올라탔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있다. 오랜만에 본 성희 모습은 한국에서 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스리랑카의 이국적인 풍경이 내 주의를 모두 앗아가 버려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앞 좌석의 스리랑카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한국말이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차민다'라고 한다. 한국에서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국적 외모의 남자는 차민다네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밴은 곧바로 공항터미널 근처의 주차장으로 향한다. 앞서 얘기한데로 콜롬보 공항은 국제 공항이라고 부르기 민망스런 규모이다. 차민다의 차가 주차한 곳에서 본 공항은 작은 도시의 버스 터미널같은 느낌이다. 차를 주차시키고 주차장을 빙 둘러서 근처에 차마시는 곳으로 향한다. 허름한 찻집과 그 옆에 조그만 공터에 놓여진 쉼터같은 건물에 도착했다. 나는 차 한잔과 바나나 한개를 시켰다. 쉼터의 건물은 중앙에 공원을 관리하는 듯한 사람들이 앉는 의자와 그 의자를 둘러싼 동그란 책상. 그리고 다시 그 주변을 벤치들이 동그랗게 둘러쌓고 있는 구조이다. 차밍다와 성희가 한국말로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고 있고 나는 가끔씩 그 대화에 동참했다. 차밍다는 한국에서 중고 피시를 가져다 현지에서 파는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그 한국쪽 파트너인 한사장님이란 분이 오신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비행기보다 두시간쯤 뒤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잠깐 그렇게 차한잔을 마시고 다시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한다. 스리랑카의 밤은 덥다. 그나마 다행인건 한국에서 느끼던 여름밤의 열대야 같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끈적한 느낌은 없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또다른 현지인인 T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차민다보다 훨씬더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성희가 이렇게 한국말 잘하는 사람 첨봤다며 놀란다. 그리고 비행기가 더 연착되어서 네시가 넘어서 도착할거라는 얘기를 전한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드는것 같다.

차민다와 같이온 직원은 밴에서 잠을 좀 청하겠다고 한다. T와 성희 그리고 나는 좀전에 차한잔 마셨던 곳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이날씨에 밴에서 새우잠을 자기는 부담스럽다. T는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면에선 나보다 한국을 더 잘아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쉼터 벤치에서 스리랑카와 한국에 대한 얘기를 한참 나누었다. 스리랑카의 정치 현실이나 시민의식에 대해서 T의 날카로운 비판들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70년대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곳의 모습을 보면 한국이 지금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느껴진다. 이나라도 30년 후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사장님이 도착할 비행기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원래 콜롬보 공항에서 캔디까지는 밴을 빌려서 올 예정이었다. 밴을 빌리게 되면 캔디까지 대락 4000 링깃 정도가 든다. 그렇지만 차민다네 밴을 이용 한사장님과 같이 캔디로 이동하면 공짜로 올 수 있기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차민다의 밴을 이용하기로 한거다. 물론 비행기 연착이라는 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다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T는 자신의 차에서 잠깐 쉬기러 하고 우리는 차민다의 밴으로 향한다. 차민다는 차에서 자고 있다가 우리가 오는 소리에 눈을 뜬다. 우리도 잠시 자겠다고 말하고 차 뒷좌석에 대충 몸을 누위고 잠을 청한다.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기전에 두주동안 말라리아 약을 먹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바르는 모기약이 포함된 짐은 홍콩에 있다. 별수없다. 그냥 잠을 청해보는수 밖엔..

잠깐 눈을 붙였을까 모기 소리에 이내 잠에서 깨었다. 입고있던 셔츠를 벗고 흰셔츠 하나만 입고 차밖으로 나섰다. 앞좌석에서 자고 있던 차민다와 성희 역시 차 밖으로 따라나온다. 역시나 모기 소리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면서. 성희가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성이 있는 모기가 활동하는 시간이 지났다는 얘기를 해준다. 새벽에 활동하는 모기는 괜찮다면서..

한사장님이 도착할 비행기편이 올 시간이 가까워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은행 환전 창구처럼 보이는 곳에 있는 안내원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짐에대해서 성희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 직원역시 애매한 표정으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결국 내일 짐을 찾으로 오는것으로 결론을 낸다. 폭탄 테러 탓인지 경비는 여전히 삼엄하다. 공항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꾸 입구쪽에 있는 사람을 멀찍히 밀어낸다. 우리도 결국 입구에서 먼곳으로 밀려났다. 갑자기 우당탕 하는 큰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는쪽을 보니 버스가 멈춰서있다. 잠시나마 놀랐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버스 윗부분이 건물 천정에 있는 쇠막대에 닿아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을때쯤 한사장님과 일행 한분이 서있다. 드디어 공항에서 떠날수 있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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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에 타고 곧바로 캔디로 향했다. 캔디는 해발 500미터 정도에 위치한 도시다. 스리랑카 관광에는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할만큼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호텔도 캔디엔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높은 고도에 위치한 탓인지 콜롬보에 비하면 꽤 선선한 편이다. 아주 더운 몇달을 제외하면 살기가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콜롬보에서 캔디까지의 거리는 100km쯤 된다. 거리를 듣는순간 한시간쯤 가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물론 이것은 크나큰 계산 착오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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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로 출발할 시간즈음엔 거의 하늘이 밝아 있었다. 공항을 벗어났다 싶을때쯤 이차선이라고 부르기엔 좀 좁아보이는 구불구불한 도로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새벽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었지만, 2차선의 좁은 도로는 아무리 빨라도 평균시속 40km를 제한속도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차에 타고 있는 나는 한동안 좌불안석 이었다. 그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끊임없이 앞차를 추월하며 달리는 운전때문 이었다. 스리랑카 여행 후반에는 이러한 운전 방식에 익숙해져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만, 차민다의 밴으로 캔디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솔직히 스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차창밖으로 펼쳐진 이국적인 스리랑카의 새벽 풍경과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매캐한 공기를 뚫고 차는 조금씩 오르막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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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가는길에 들린 식당 모습

 두시간쯤을 더 달리고난후 아침을 먹기위해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카레 와 밥 그리고 국수처럼 생긴 음식들이 차려진 부페가 눈에 들어온다. 저 음식을 내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싶다. 성희가 따로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어제 비행기에서 세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음식을 멋은 탓도 있고 오랜시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선지 뭔가를 먹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사장님과 일행(오사장님) 한분은 각각 별도의 음식을 주문하고, 차민다와 직원은 부페음식을 먹기러 했다. 나하고 성희는 가볍게 차한잔 하는것으로 만족했다. 나중에 나온 음식을 몇점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성희말로는 이곳 음식점은 꽤나 맛있는 편에 속하는 곳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칠때쯤 한사장님이 근처의 코끼리 고아원에 들렀다 가자고 제안을 한다. 어차피 성희의 여행계획에 포함된 코스였으므로 나와 성희역시 흔쾌히 동의한다.

코끼리 고아원에 가기위해서 캔디로 가는길을 잠시 벗어나서 차를 달린다. 코끼리 고아원으로 가는 길은 이전에 달려온 길보다 폭이 더 좁다. 폭이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운전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스릴 넘친다. 그렇게 얼마쯤 달리고 차가 멈춰섰다. 내 첫번째 관광 코스인 코끼리 고아원에 도착한 것이다.

2007. 3. 13. 00:10

선잠끝에 졸린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 바늘을 다섯시를 지나가고 있다. 피곤함과 긴장감이 묘하게 뒤섞여있다. 피곤함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챙겨놓은 짐을 주욱 둘러본후 컴퓨터를 켠다. 내가 맡고 있는 몇몇 동호회의 게시판에 잘 다녀오겠다는 글을 남기고 욕실로 향한다. 간단한 사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세면도구를 짐속에 꾸려 넣는다. '잊어 버린건 없겠지' 다시한번 머리속으로 짐을 주욱 훑어본다. '여섯시 이십분 즈음해서 공항버스가 집 근처를 지나같다고 했던가' 어젯밤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버스 시간을 기억해 내고 집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차지만 그렇게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집을 거의 한달 동안이나 비워둬야 한다. '웬만한건 다 챙겨둔 듯 하니 별일이야 없겠지'. 하긴 뭐 별일이 있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공항버스는 제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짐칸에 가방을 싣고나서 버스에 몸을 실으니 약간의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제 정말 떠나는거다.

공항에 도착해서 약간 우왕좌왕 하다가 비행기표 티켓팅을 마치고 짐을 실었다. 몇년만의 해외여행이라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꽤 낯설다. 근처 은행 환전소에 들러서 환전을 했다. 미화 700불, 홍콩달러 3000불. 그리고는 곧바로 출국 터미널을 통과한다. 출국 수속 및 짐 검사 등등은 별다른것 없이 끝났다. 이제는 홍콩으러 갈 비행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 인터넷으로 알아본 항공권은 홍콩을 경유해서 콜롬보로 가는 일정이었다. 홍콩까지 가는 비행기가 타이빼이를 거치고 콜롬보로 가는 비행기가 방콕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로는 4번의 비행 여정이다. 좀더 싸고 경유지가 더 적은 항공권을 구할 기회도 있었지만, 오는 길에 3일정도 홍콩에 들리고파서 이 항공권을 택했다. 다행이 올때 항공권은 홍콩에서 인천으로 곧바로 오는 일정이다.

내가 이용한 비행기는 9시 15분 홍콩발 케세이 퍼시픽이다. 다행스럽게 인천에서 홍콩까지 가는 비행기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홍콩까지는 영어의 압박을 피할 수 있을 듯 하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탓인지 공항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었는데 비행기에 타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식사가 제공된다.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은 없다. 비행기 식단을 보면서 불현듯 한달 가까운 여행에서 음식이 입에 맛을지가 걱정이다. 고추장이며 김 등등을 준비는 해가지만 말이다. 참, 그러고 보니 여행자 보험에 드는걸 깜빡했다. 건강하게 여행을 마쳐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비행기는 두시간이 조금 지나서 타이빼이 공항에 도착했다. 승무원이 와서 공항에 내릴것인지 아니면 그냥 비행기에 머물지를 물어본다. 한시간 후면 출발하는 여정이므로 굳이 공항에 내릴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냥 자리에 있겠다고 했다. 타이빼이를 경유해서 홍콩에 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지 비행기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조금 있으니 비행기를 청소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청소를 한다. 별수없이 한시간동안 멍하니 비행기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수 밖에는 없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다시 사람들이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제 한국말하고는 안녕이다. 옆자리에 앉은 꼬마가 신기한지 나를 몇번 쳐다보더니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에게 웃으며 뭐라고 얘기한다. 뭐라고 얘기하는 걸까? 말이 안통한다는건 역시나 답답하다.

내가 인천에서 왔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또 기내식이 제공된다. 벌써 세끼째다. 그렇게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조그만 모니터로 영어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비행기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타이빼이에서 홍콩은 생각보다 얼마 멀지 않았다. 정말 금방 도착한 듯 하다.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나섰다. 여기서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 다섯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방콩으로 향하는 경유 비행기를 잡아타기 위해서 'Transfer'라고 쓰여진 표지를 따라 이동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서 다시 보안검색을 받고 공항터미널에 발을 디뎠다. 이 공항은 98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시설도 깨끗한 편이고, 공항의 크기도 상당히 큰편이다. 비행장 저편으론 홍콩 특유의 높다란 아파트 건물들이 보인다. 면세점을 기웃거려보고 넓은 공항 터미널을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걸어봤지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아직 멀기만하다. 한국에서 아침부터 세끼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것도 놀랍다. 조금이나마 기다리는 시간을 메꿔보려고 간단한 일본식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여전히 일본식 라면은 내 입맛엔 느끼하다.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아있다. 비행기를 탑승할 입구를 찾아서 근처 의자에 앉아서 책을 펼친다. 이럴땐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도 쉽지않다. 얼마쯤 있으니 공항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아가씨가 다가와서 종이한장은 건네준다. 영어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면서 십여분쯤 설문지를 채워나간다. '홍콩 공항에 뭐가 가장 아쉬운것 같으세요?' 라는 물음에 '놀거리가 부족한 것 같네요'라는 답에 설문을 조사하는 아가씨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덕분에 잠시나마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창문밖의 공항 풍경이 어둑해질때쯤 드디어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었다. 언제 지루했냐는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세번째 이륙이 나를 기다린다. 3주후면 홍콩 관광을 위해서 이곳에 다시 들려야한다. '그때까지 잘있어라~'

또 식사가 나온다. 다섯번째 식사다. 설마 방콕에서 콜롬보러 가는 비행기안에서도 식사가 나오려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보면 분명 나올께다. 식사의 패턴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열대의 느낌이 나는 과일들로 말이다. 거의 하루종일 비행기에서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씩 눈을 붙이는 것 이외에는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서너시간 간격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려서 여행의 지루함은 좀 덜하지만, 새벽 일찍 출발한 나로서는 이런 여행 패턴이 피곤을 더하는 것 같아서 내심 걱정되는 부분이다. 성희가 스리랑카 여행계획을 빡빡하게 잡아놨다고 경고 했었는데 말이다.

비행기 밖의 기온이 25도 라는 멘트와 함께 방콕에 도착했다. 이번엔 비행기에서 콜롬보를 가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렇지만 방콕에서 추가로 더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은 방콕 현지시간으로 9시다. 앞으로 세시간을 조금 넘기면 스리랑카에 도착한다. 홍콩에서 부터 같이 비행기에 타고온 사람들은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입고 있던 겨울 스웨터를 벗고 가벼운 가을 셔츠만 입고 있는데도 덥다. 스리랑카로 가는 여정의 마지막 비행기편이 이륙한다. 스리랑카는 여기서도 한참 남쪽이다. 과연 어떤 더위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도착 시간을 20여분 일찍 콜롬보 공항에 도착한 듯 하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수하물을 찾기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인천공항이나 첵랍콕 공항이 백화점이라면 콜롬보 공항은 거의 슈퍼 수준이다. 1층에 내려와서 짐을 기다리는 곳에 한참 서있으니 누가 와서 말은건다. 이곳이 홍콩에서 온 짐 찾는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저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웬지 시작이 좋지않다. 컨베이어 벨트에는 짐들이 줄지어 실려나오고 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내 짐이 보이지 않는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힐끔 거리며 내 주변을 배외한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서 드디어 내 짐 하나가 나왔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있는 것일까.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렸다. 컨베이어 벨트위의 짐의 갯수도 현저히 줄었고, 짐을 기다리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뭔일이 생긴걸까남. 공항 직원이 내게 말은 건다. 나는 내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콩글리쉬 몇마디를 건넨다. 내 수하물 표를 보자고 하더니 어딘가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후 좋지않은 소식이 있다며 한마디 건넨다. '나쁜 소식이네요. 당신의 짐이 아직 홍콩에 있다는군요'.

공항 안내를 담당하는 듯한 카운터에서 한참 비행기표며 여권등을 보여주고 나서 내일 내 짐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일 이시간에 공항으로 오란다. 오늘저녁에 캔디러 가기러 했는데 내일 짐을 찾으러 다시 오라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뭐 짧은 영어 실력에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고, 알려주는데로 열심히 연락처를 적어두고 공항을 나섰다. 제발 짐이 잘 도착하기를 빌면서 말이다.

공항 입구엔 십여명의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열심히 나를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공항 입구를 나섰다. 동네 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 입구의 분위기 거기에 무장한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있는 통에 분위기가 삭막하기 그지없다. 성희는 아직 도착 전인가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른다. 내 당황스러움이 눈에 띄었던지 공항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이끈다. 공항 안쪽에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다시 공항으로 들어선다. 공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총을 든 군인이 보안 검색을 실시한다. 방금 짐을 메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짐을  X레이 투시기에 통과시킨후 공항에 입장시킨다. 그리곤 좀전의 공항관계자가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이끈다. 책상 하나, 전화기 하나, 선풍기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사무실이다. 성희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그사람에게 보여주니 그 사람이 전화를 건다. 그리고 몇마디 통화를 하더니 전화기를 내게 바꿔준다. 다행이다.

공항에 거의 도착했다는 성희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짐을 챙겨들고 다시 공항입구로 나선다. 허름해보이는 밴 창문으로 성희가 손을 흔들고 있다. 스리랑카 여행의 시작이다.


 

2007. 3. 10. 18:40
스리랑카는 인도 옆에 붙어 있는 섬나라다. 스리랑카 하면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설혹 이름은 낯이 익더라도 지도상에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스리랑카는 내게는 너무 낯선 나라였고, 내가 가보고 싶은 목록에 한번도 올라본적이 없던 나라였다. 그런데 그런 내게 기회가 생겼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게 엄청난 행운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2006년 12월의 어느날이었다.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다른 프로젝트와는 달리 여유있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던 중이어서 시간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다만 다음 1월에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기간에 비해서 일정이 빡빡한 것이 문제였지만, 프로젝트를 앞서서 끌고 나가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성희와 메신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희는 내가 가입한 동호회에서 알게된 친구이다. 이 친구는 작년에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스리랑카로 훌쩍 떠났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적응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지만, 2년 가까이 된 지금 잘 적응하고 있는걸 보면 무척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 친구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놀러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스리랑카가 너무 멋진 곳이라면서 말이다.

여행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한달간의 준비기간과 설레임. 한달 휴직을 결심하고, 회사 사장님께 동의를 구했다. 회사 사정을 무시하고 좀 막무가내 식으로 부탁했지만, 어려운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휴직에 동의해 주셨다. 그리고는 성희와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메신저를 통해서 여행계획을 얘기했다. 스리랑카 근처에 위치한 몰디브나 인도가 여행 계획에 포함되었다가 빠지기를 몇번씩 반복한 끝에 스리랑카 2주, 인도 1주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 이틀 들리는 것으로 계획이 세워졌다. 스리랑카나 인도에서의 세세한 여행 일정은 모두 성희가 잡았다. 이때만해도 나는 여행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게 무었인지 몰랐다. 그만큼 스리랑카는 내게 낯선 나라였다.

인도 대사관을 쫓아다니며 비자를 만들고, 홍콩에 숙박지를 예약하고, 홍콩을 경유해서 스리랑카를 왕복하는 할인 항공권을 예매했다. 성희가 부탁한 과자, 라면, 커피 등등과 내가 먹을 김, 고추장등의 간단한 한국음식등도 매주 주말마다 조금씩 준비했다. 변변한 사진기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큰맘먹고 DSLR도 하나 장만했다. 등산화 및 뿌리는 모기약, 바르는 모기약 그리고 말라리아약 등등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는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여행시작 바로 전날에는 현지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서 인사동에 들러서 선물을 열개남짓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짐을 꾸리니 여행용 가방 한개, 배낭 한개, 작은 가방 한개 이렇게 짐이 꾸려졌다. 처음 생각보다 준비한 짐이 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스리랑카로 출발하기 위한 일요일 아침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스리랑카에 가기 전날은 내가 맡고있는 M단체의 가입 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금요일엔 회사 워크샵마져 잡혀 있었다. 토요일 테스트 때문에 용인에서 워크샵을 마치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과천 집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여행 짐을 정리하고 잠이든게 새벽 세시쯤 되었던 듯 하다. 토요일 테스트 준비로 일찍 용산역에 도착해야 했고, 그 전에 인사동에 들러서 선물을 사야해서 잠을 몇시간 못잤다. 그렇게 시작된 토요일 하루가 가고 테스트 진행을 도와준 몇사람들로 부터 잘다녀오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하루 일정이 끝났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아홉시. 드디어 내일이면 여행이 시작된다. 웬지모를 긴장감이 엄습한다. 다시한번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주욱 머릿속으로 훑고나서 핸드폰 안내 메시지를 바꾸고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항까지 가는 공항버스 노선을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