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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3. 22:24

얼마전에 제주 박물관에서 세한도를 전시하는 일정이 있어서 유홍준 교수의 추사에 대한 강의도 들을 겸 겸사겸사 제주를 다녀왔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간다고 느낄 때 쯤 추사의 글씨가 좋아 보이기 시작 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 갔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씩 추사의 작품들을 보러 다닌다.

 

학교때 추사에 대해 알고 있는건 가장 유명한 작품이 '세한도'라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년간 추사의 글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전시회나 도록집을 통해서 추사의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 추사의 작품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내 나름의 이런저런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감정들에 앞서서 추사 글씨 앞에 서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한획 한획을 쫓아 다니면서 느끼는 감탄과 거기에 따라오는 자연스레 미소 역시 좋다. 솔직히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글씨에 대한 이런저런 해설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편이다. 글씨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득한 경지에 가슴 뛰는것 만으로 좋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항상 미스테리는 '세한도' 였다. 이 작품이 추사의 대표작 이라고 하는데 난 어느 부분이 그러한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전문가들의 평을 읽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작품이 좋아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나로선 내 미학이나 철학의 수준이 추사의 그것에 전혀 근접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추사의 글씨처럼 내게도 전해지는 무언가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시간이 지나가고 최근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내가 출근하는 버스 정류장 벽 한편에 추사의 '세한도' 사진이 있다. 그래서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일주일에 몇번은 반드시 세한도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긴 궁금증은 왜 가운데 있는 집이 저런 형태로 그려졌을까 였다. 이후에 추사에 대한 공부를 더해 가면서 추사의 일생과 추사에게 영향을 준 화풍들을 통해 '세한도'가 던져주는 메마른 느낌의 화풍엔 어렴풋이나마 적응했지만, 집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큐레이터 분에게 '세한도'에 대한 설명도 들어 보았지만,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위 사진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세한도' 그림이다. 가운데 집이 있고, 집의 공간을 표현해 놓은 듯 뒤쪽으로 기다란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갈필로 그린 네그루의 나무가 양 옆으로 서 있다. 어찌보면 삭막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것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덧붙여 있다. 그리고 집 정면에 창문에 하나 보인다. 특이한 점은 이 창문의 방향과 기다랐게 그려진 집의 방향이 반대라는 점이다. 추사 글씨에서 느껴지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봤을때 난 이러한 불일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궁금증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아침 버스를 기다리면서 머릿속으로 이 그림을 분해해 보기 시작했다. 추사는 왜 저렇게 그림을 그렸을까가 이해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우연히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미지가 있었다.

 

내가 상상해 본 이미지

그리고 위 그림과 같은 풍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집이 풍기는 이미지는 제주에 유배된 '추사'를 나타낸 다는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좌우 대칭이 되는 푸른잎의 나무들을 자신의 현재 상황에 관계 없이 항상 꾸준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저 그림이 아닌걸까? 도대체 내가 뭘 이해하고 못하고 있는걸까?

 

세한도 발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 공자(孔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 ·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 ·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 ·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https://www.itkc.or.kr/bbs/boardView.do?id=75&bIdx=31460&page=1&menuId=126&bc=0 에서 발췌]

 

소나무와 잣나무는 항상 푸르르지만, 엄동이 된 이후에 공자가 그것을 칭찬한것은 그 시기에 느낄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사는 적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상상한 아래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면 나무의 푸르름에 비해서 집은 상대적으로 현실의 어려움만을 극단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 변치 않는 좋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집은 외로워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다시 대충 그려 놓은듯한 길게 그려놓은 집을 다시 바라봤다. 대충 그려놓은 듯한 선들은 내 상상속의 집 그림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을 다 지워버렸다. 적당히 그려놓은 선들임에 불구하고 묘하게 풍족스러운 느낌마져 던져준다. 주변의 나무들과 집이 어우러지는 느낌도 더해준다. 마치 그렇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선들의 마무리를 꼼꼼하게 하지 않은듯도 보인다. 창문의 위치 역시 현실과 자신의 내면을 대비 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런 내 생각은 이 그림을 그렸던 추사의 생각과 아득히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딱히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방법 역시 없어 보이기에 우연히 떠오른 이 생각들을 몇자 끄적여 보았다. 이런게 내 나름으로 추사의 작품들에 조금씩 다다가는 방법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