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에서 두번째 아침을 맞았다. 오늘도 새벽에 어김없이 깨었다. 잠자리가 특별히 불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도 두세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깬 듯 하다. 약간 피곤한 느낌은 있지만, 크게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다.
한두시간쯤 후에 성희가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미역국에 약간 매콤한 참치 볶음이 아침 메뉴다. 입안은 여전히 까끌하다. 어제 먹은 술때문인지 입맛은 좀더 없는 것 같다. 매콤한 음식이 위를 자극한 듯 약간 쓰린 느낌이 든다. 어제 괜한 호기로 맥주에 추가한 와인이 좀 무리였던 듯 하다. 그릇에 담겨있는 밥과 미역국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불편한 속이 조금 부담스럽다.

바자지는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오른다. 이런 산길을 바자지로 오를테면, 과연 제대로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데도 바자지는 곧잘 올라간다. 가끔씩 가파른 길에서 시동이 꺼지는 일은 허다하지만 말이다. 티팩토리로 가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우리나라 산길을 연상하면 된다. 비포장과 포장이 뒤섞인 도로를 굽이굽이 올라간다. 가파른 경사면 주위에 어떻게 버티고 서있는지 모를 건물들과 차 나무들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산 꼭데기에 다다르자 이곳 건물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5층짜리 건물이 서있다.



아마 잠깐 잠이 들었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성희는 여전히 찻집 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약간의 잠이 피곤을 몰아낸 듯 하다. 그런데 약간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서 잔 탓인지 등 근육이 뻐근하다. 성희가 돌아와서 차를 한번더 주문한다. 이곳 주인이 곧 이 가게를 그만둘거라는 소식을 전한다. 이곳이 산 꼭데기에 있어서 오고 가기도 불편하고, 오늘처럼 장사가 썩 잘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성희가 아쉬워한다. 아마 내가 다음번에 이곳을 방문하면 이런 느낌으로 차를 마시는 호사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주문한 차가 도착하고 느긋하게 차 한잔을 더 마신다. 이 분위기를 한국에 옮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점심때가 다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등쪽 근육이 뻐근하다. 속이 불편한 걸로 봐서 체한것 같다. 한국에서도 자주 체하는 편이라서 걱정을 했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된 것 같다. 성희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오후 일정을 조정하자고 얘기하고, 나도 집에서 쉬는편이 좋겠다고 한다.

좀더 걸어 내려가니 산에서 내려오는 버스가 지나친다. 성희가 얼른 불러세우고 차에 올라탄다. 버스는 만원이다. 바자지로 올라올때도 험하게 느껴졌던 길을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내려간다. 브레이크나 제대로 동작하는 버스일까도 의심스러운 버스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는건 썩 즐거운 느낌은 아니다.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내릴때 차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쁘다.
산길을 다 내려와서 버스가 멈추었다.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성희가 점심을 인도 음식으로 먹자고 한다. 체한 탓에 입맛은 전혀 없지만, 조금이나마 음식을 먹기러 하고 인도 음식점으로 향했다. 인공호수를 끼고 조금 걸어서 '스리람'이라는 인도 음식점에 들어섰다. 그리 크지 않은 인도 음식점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사람이 앉아있다. 성희가 요리를 몇개 주문한다. 벽과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들이 화려하다. 잠시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얇은 밀가루 빵으로 둘러싼 요리와 새우로 볶은 밥 두가지다. 위에서는 전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오고 있어서 조금만 먹기러 한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불편한 속은 음식의 맛을 느끼는걸 불가능하게 했다. 그래도 조금씩 꼭꼭 씹어서 음식을 삼켰다. 한국이라면 죽이라도 먹었을텐데 여기선 별 수 없다. 빨리 속이 편해지지만을 기도하는 수 밖엔 말이다.

그렇게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성희네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편해지기를 기대하며 거실에 있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얕은 잠을 오락가락 한 듯 하다.
성희가 먼저 전화를 한것인지 그쪽에서 전화가 온것인지는 모르겠다. 성희가 저녁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일하다가 사귄 엔지니어 분 댁이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기억이 무척 소중하지만, 그때는 좀 힘들었던게 사실이다. 웬만하면 그냥 쉬자고 하고 싶은데 어렵게 초대한 자리를 거절하자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성희가 내가 속이 안좋다고 그쪽에 얘기했으니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체한 상태로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았는데 걱정이 안될리가 없다. 더군다느 나는 아직 이곳 음식에 적응이 안되었는데 말이다.

가게 풍경
캔디의 좁다란 이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간후에 엔지니어 분의 집에 도착했다. 엔지니어분의 가족은 딸과 아들을 포함한 네 식구다.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서 조금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른 가족이 도착한다. 엔지니어 분의 친구분이 도착했단다. 이때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은 만나는 일정엔 거의 어김없이 이러한 예기치 못한 만남들이 따라다녔던 듯 하다. 아마 성희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 탓이 아닐까 싶다. 친구분은 이곳에서 교장선생님을 하고 계신단다. 스리랑카의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서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교육 제도에 대한 부분은 견학하고 있다고 했다. 엔지니어분과 교장선생님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성희와 내 앞에 자리한다. 한참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를 제외한 세사람의 대화였다. 나는 가끔 성희가 말하는 주제에 대해서 부가 설명을 하는 정도로 대화에 참여했다. 어설픈 영어 약간과 좀더 복잡한 내용은 성희를 통해서 말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다행히도 대화의 내용을 어느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성희가 얘기하는 영어 발음은 현지인에 비하면 알아듣기가 무척 수월했던것도 한 몫 했다.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엔지니어분과 교장선생님의 아들은 옆에서 열심히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다. 좋아하는 것들은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대화 중간중간에 내가 체했다는 설명을 성희가 몇번 덧붙였다. 체했다는 말 자체가 이곳에 없기 때문에 그냥 속이 불편하다 정도로만 전해졌던 듯 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데 어찌 해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한국이라면 죽을 먹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만한 상태인데 말이다. 저녁 준비가 끝난것 같다. 저녁 식사가 차려진 옆방으로 다들 이동하고 성희는 손을 씯으러 간다. 이곳에서는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 테이블에는 요리들이 스푼과 함께 주욱 놓여지고 각자 앞에 놓여진 접시에 필요한 만큼 덜어놓은 후 적당히 양념과 버무려서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 음식을 먹기전에 손을 씯는게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나같이 여행을 온 사람들은 손으로 먹는것은 피하는게 좋단다. 성희도 이곳에 도착해서 한동안 손으로 음식을 먹고나서 속이 불편했다고 한다. 성희는 한가지 주의사항을 덧붙인다. 그냥 따라주는 물은 먹지 말라는 것이다. 역시나 같은 이유로 처음 이곳 물을 마신사람은 한동안 배탈을 각오해야 한단다. 내 자리 앞에는 접시와 함께 추가로 스푼이 놓여진다. 처음보는 스리랑카 음식이 앞쪽이 가득하다. 속은 여전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앞쪽에 놓인 음식을 접시에 약간 가져다 담는다. 그리 많이 먹지 못할게 분명하기 때문에 약간만 덜어 놓는다.


나, 교장선생님 가족, 엔지니어 가족
성희가 내일은 누워러 앨리야에 갈거라고 얘기해준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뜸 효과를 내는 쑥 패치를 등 곳곳에 붙인다. 체한게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