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o~ 2023. 6. 28. 22:54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여정이 한번 실패해서 이번에도 또 못 가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싶었다. 가보면 별게 없을지라도 안 가본 곳은 왠지 뭔가 근사한 것이 있을 것 같다. 파묵칼레가 터키의 대표적 여행지 중 하나라는 생각에 더 그렇다.

새벽 호텔 입구, 파묵칼레 관광버스, 오닉스 공장

5시 30분 픽업이라고 해서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3주가 넘게 지나서 시차에 적응이 됐을 거라 생각되지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것 치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직은 한국 시간대를 몸이 기억하고 있나 보다. 5시 15분에 호텔 앞 의자에 앉아서 픽업이 오기를 기다렸다. 45분까지 픽업이 오지 않자 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우처를 보니 내가 속한 지역은 6시 정도에 도착이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6시가 다 될 무렵 픽업 버스(소형버스)가 나타났다. '에페소스' 팻말이 차 유리에 놓여있어서 처음엔 아닌 줄 알았는데 기사분이 이름을 확인하고 맞다고 한다.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기사분은 터프하게 운전하신다. 이렇게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4시간 넘게 파묵칼레 갈 생각을 하니 살짝 걱정이 앞선다.

픽업 버스는 보드룸 시내를 돌려 여행객들을 태우고 시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 외곽에 자리한 새로 만든 버스 터미널 근처의 공터에 멈춰 선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 한분이 다가오더니 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앞에 커다란 버스가 서 있다. 호텔 이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등록 여부를 확인한다. 오케이란 말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이미 손님들로 꽉 차있다. 예상 밖이다. 혼자서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없어서 앞쪽에 젊은 여성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 시간 버스를 뒷좌석에서 타고 싶지는 않아서 별 수 없다. 옆자리 여성은 내 옆에 앉은 젊은 남성과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가족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를 계속 나누고 있다. 말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럴 거면 왜 창쪽에 앉았나 싶다.

 

Note. 창문 쪽에 앉은 여자는 나중에 결국 나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관광버스에서 신기했던 건 가이드가 네 명이나 탔다는 점이다. 영어, 러시아어 그리고 두 가지 언어로 더 안내를 해 줬었는데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파묵칼레 관광이 유명하긴 한가 보다.


7시가 넘어서 버스는 출발했다. 악사라이에서부터 계속 버스로 여행하다 보니 오늘 여정도 길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알고 나니 버스 여행이 슬슬 힘들어진다.

가는 길에 기억에 남는 건 이날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터널 지나는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터키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버스를 탔건만 처음 터널을 보았기 때문이다. 터키 중앙의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해안으로 이동하려면 1000미터가 넘는 높이를 내려와야 한다. 당연 그 가운데 공간들은 험준한 산들이 채우고 있다. 그런데 이 구간의 도로에 터널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길들이 굽이굽이 산을 돌거나 산의 경사면을 에스자로 타고 내려와야 한다. 이 길을 네 시간 넘게 가야 하니 그 여정이 쉬울 리가 없다.

네 시간이 넘게 걸려서 파묵칼레 근처에 도착했다. 관광버스가 아니랄까 봐 오닉스를 가공하는 공장에 잠시 들린다. 20% 할인쿠폰을 나눠주고 승객들을 내려준다. 나야 딱히 뭘 살게 아니라 잠깐 훑어보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파묵칼레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흐렸다. 가이드가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앞까지 안내해 주고 3시까지 자유시간을 준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입장권과 락커룸키를 건네준다. 안에 들어가 보니 고대 목욕탕에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사람 많은 저 안에 들어가야 싶은 생각이 든다. 사진에서 봤던 하늘빛깔 웅덩이가 층층이 쌓여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굳이 목욕탕 입장권은 살 필요가 없었지 싶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여행사에서 주어준 3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아서 욕탕에 들어가 느긋하게 있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욕탕에서 셀카를 찍을 수도 없다. 주변에 걸어 다니면서 찍는 건 괜찮으니 아마도 이것도 상술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보지는 못했지만 욕탕에서 수영하는 모습의 사진을 판다던지 하는 등으로 말이다. 목욕탕에 있는 사진을 찍으려면 2인 1조가 돼야 한다. 한 사람은 목욕탕에 들어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밖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혼자 온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파묵칼레 주차장, 파묵칼레 풍경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정면으로 주욱 걸어가면 좌측에 박물관이 있고 그 박물관을 지나서 걸어가면 파묵칼레 사진에서 흔히 등장하는 하늘빛 물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서 이런 모습이 형성된 것인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좀 적은 아침에 왔더라면 이 풍경의 신비함이 더했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풍경을 본 것만으로 만족이다. 지나가는 남자 한 분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파묵칼레 풍경


다음 관람지는 오던 길에 있던 박물관이다. 그리스 고대 박물관에서 기원전 조각들의 변천사를 주욱 보고 나서인지 2세기 근처의 이곳 조각상이 화려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조각의 화려함을 보면서 이 시기가 로마 문명의 정점이었겠구나 하는 생각과 이런 화려함이 있었다면 빈부 격차 역시 심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제 KOS 섬에서 본 로마시대의 대저택과 겹쳐지면서 말이다. 이 시대의 기둥이 화려한 코린트식 기둥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주변 풍경


다음 둘러볼 것은 클레오파트라 목욕탕 뒤편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다. 구글지도를 보면 이 주변에 상당히 많은 유적지들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다 둘러보려면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잡아야 할 듯하다. 약속한 세시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난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을 보는 것으로 파묵칼레 일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여러 번의 원형극장을 봐서 처음 봤을 때만큼의 신기함을 없었지만, 지금까지 본 원형극장의 가장 완전한 모습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이 극장의 모습만 봐도 전성기 로마에서 시민으로 사는 삶은 꽤나 만족스러웠을 듯싶다.

히에로폴리스, 원형극장


원형극장을 마지막으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서 남쪽 게이트로 향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기 전부터 내리던 비는 좀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슬비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내리는 정도이다. 남쪽 게이트를 나와서 마그넷 한 개를 산 후 버스에 올라탔다.

이후의 일정은 별게 없었다. 딱히 맛있다 맛없다를 논하기 애매한 뷔페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고, 그 이후에 쇼핑몰에 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뷔페를 나와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샀는데 꽤 만족했다는 점이다. 너무 달지 않고 새콤한 맛이 첨가되어 있어서 내 입맛엔 딱이었다.

네 시경에 파묵칼레를 떠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구글맵에서 보드룸이 더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더 더디게 느껴졌다. 터키 여행은 추천할만하지만 이 버스 여정은 권하고 싶지 않다. 하루쯤이야 괜찮겠지만, 악사라이부터 거의 3~4번의 경험을 한 나로서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테살로니키에서 소피아, 소피아에서 이스탄불도 똑같이 장시간의 버스 여행이었는데 유독 터키의 도시들 간 이동이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왜일까 싶다.

아침과 동일하게 버스를 갈아타는 곳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공항까지 택시비용을 물어보니 750리라 정도라고 얘기한다. 버스를 타면 반정도는 아낄 수 있겠지만, 지친 상태에서 짐을 끌로 다니면서 버스로 공항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저 정도 금액이라면 내일은 택시로 공항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맥주 한잔과 함께한 보드룸 마지막 밤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이 간절해서 생맥주 한잔을 호텔 앞 밤풍경을 보면서 먹었다. 보드룸에서 마지막 저녁이다. 이제 남은 여정은 이스탄불 일정뿐이다.

 

Note. hotel에 도착해서 내일 아침 픽업을 예약했다. welcome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간편하게 예약하긴 했는데 비용은 호텔 직원이 말한 금액보다 약간 더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