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불가리아 소피아, 릴라 수도원 투어
오늘은 버스로 불가리아 소피아로 이동하는 여정이다. 이동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캐리어를 끌며 역으로 향했다. 버스 터미널은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역 앞에 서있는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Note. 버스 티켓은 앱을 이용해서 구매했다. 이용한 앱은 INFOBUS, Omio 이렇게 두 개다. 장거리 이동은 이 두 개의 앱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었고 짧은 거리 이동은 직접 터미널을 이용했다. 그리스 기차표 예매는 Hellenic Train 앱을 이용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커다란 돔 안에 버스들이 멈춰 서 있다. 타는 곳을 둘러보니 소피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 플랫폼 번호를 확인한다. 내가 확인한 번호와 동일하다. 출발시간 20여분 정도 전에 버스가 들어오고, 운전기사가 소피아 행 푯말은 앞 유리창에 표시한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에는 열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한시간을 달려 중간에 어느 정류장에 한번 정차한 후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렸다. 버스가 멈춰 서고 버스기사가 무어라고 손짓한다. 보아하니 국경을 넘는 것 같다. 손님들이 모두 여권을 들고 내린다. 나도 역시 따라 내린다. 출국 및 입국은 매우 간단하게 이뤄졌다. 여권을 뒤적여 보고 출국 도장 한번 그리고 불가리아 입국 도장 한번 이것이 전부였다. 다시 버스를 타려고 뒤를 돌아보니 기사가 '프리 샵'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을 보니 면세점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면세점은 큰 슈퍼마켓 정도의 크기였다. 뭔가를 살까 살짝 고민하다가 아직 3주나 남은 여정 내내 들고 다닐 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포기하고,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잠시 마켓 앞에 앉아 있으니 기사가 차에 오르라고 손짓을 한다.
Note. 육로를 통해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짐을 모두 챙겨서 국경을 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 짐 검사를 하겠거니 했는데 출입국 도장을 찍는 걸 제외하면 따로 짐 검사는 하지 않았다. 불가리아 쪽 국경 경비대로 보이는 사람이 버스 짐칸을 열어보라고 하고 짐을 눈으로 한 번 훑어보는 게 전부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도 문제가 없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간단한 절차의 국경 통과였다.
다시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쯤 지나니 험한 산세가 논에 들어온다. 차선도 2차선으로 줄어든다. 버스가 지나는 길 옆으로 거세게 흐르는 갈색의 강이 있다. 예전 잉카 트레일에서 본 우르밤바강의 거칠음 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우리나라의 강들에 비하면 거칠기 그지없다. 그렇게 30여분 가까이를 거세게 흐르는 강을 끼고 산으로 둘러쌓은 공간을 지나갔다. 왜 테살로니키와 불가리아를 잇는 기차표가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험한 숲길을 지나치니 경치가 다시 한번 바뀐다. 우리나라의 여느 고속도로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나무들의 모습이나 주변 풍광이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그렇게 국경을 통과해서 한 시간쯤 지나니 평야지대가 등장하고 도로도 왕복 4차선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어진 길을 따라 한 시간을 이동해서 소피아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비가 흩뿌리고 있다. 조금씩 내리는 비라서 딱히 우산을 쓸 필요까지는 못느꼈지만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쪽으로 몇백 킬로 미터 이동했을 뿐인데 왠지 전혀 다른 느낌의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다. 테살로니키가 지중해를 끼고 있는 온화함이 있다면 여기는 차갑고 무거운 도시처럼 생각된다. 비가 와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숙소는 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철 역을 통과했는데 드문드문 불 꺼진 지하철역의 풍경이 어두운 뒷골목의 분위기처럼 보였다. 역 아래에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둑한 역을 지나서 구글맵을 꺼내서 숙소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숙소는 깔끔하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라면에 김치 한 조각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구글맵을 켜서 검색을 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국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배가 고파서 가는 길에 평점이 좋은 식당을 골라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했다. 맛은 있었지만 그리스 음식 보다는 덜했다. 그렇지만 배고픈 여행객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기에 충분히 괜찮은 식사였다.
식당에 나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 등장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한 곳은 아니지만, 다양한 한국 제품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진라면 두 봉지와 김치 한 봉지를 샀다. 지난 일주일간 현지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익숙한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라면을 사들고 트렘을 타고 숙소로 귀환했다. 트램 티켓을 어떻게 구하는지 몰라서 두리번 거리다가 검색을 통해서 기관사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표를 구매하고 그냥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 승객 중 한 명이 표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표에 있는 바코드를 기계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배웠다. 한주 정도의 여행으로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이므로 내일부터는 웬만하면 걷는 거리를 줄이고 짧은 거리라도 트램을 이용해야 할 듯하다.
Note. 트램을 타는 곳은 역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길 옆에 표지판으로 탑승 위치임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그런 지점에 기차가 멈춰 서면 도로를 이동하는 차들이 멈추고 사람들은 길 중앙을 이동하는 트램으로 걸어가서 탑승한다. 표를 검사하는 곳은 우리나라 버스처럼 트램 안에 있다.
Note. 트램 티켓을 바코드에 인식 시키는 것이 의외로 잘 안된다. 적당한 거리와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았지만 소피아에서 마지막 날 까지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인식이 되면 녹색 화면이 뜨는데 어떤 경우엔 쉽게 되고 어떤 경우엔 인식하는데 한참 걸린다. 내가 있는 동안엔 검표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인식시켰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소피아에서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소피아에서 다음날 일정은 '릴라 수도원, 보야나 교회 투어'다.
myrealtrip에서 소피아 관광 상품을 뒤지다가 이 상품과 플로브디프 투어 두 개 상품을 골라서 신청했다. 날짜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다가, 첫째 날 이 관광상품으로 릴라 수도원에 다녀오고, 둘째 날은 소피아 시내 관광 그리고 셋째 날은 플로브디프 투어, 마지막날은 비토샤 산에 오르는 일정으로 정했다.
전날 간단하게나마 시내 근처를 돌아보고 와서 아침에 모임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50분 전에 나와서 트램을 타고 바냐바시 모스크를 지나서 내렸다. 마음이 바빠선지 가깝다고 느껴졌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생각보다는 멀었다. 그래도 10여분 전에 성당에 도착했지만, 웬걸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가까워져서 마음은 더 바빠졌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예약을 확인해 보니 구체적으로 약속 장소가 그려진 링크를 찾았다. 성당 뒤편이다. 부리나케 이동하니 버스는 아직 출발 전이다. 내가 마지막 승객으로 버스에 올랐다. 20인승 작은 버스다. 자리가 좁아서 편안하게 이동할만한 버스는 아니지만 일단은 릴라산으로 향한다는 기대감에 불편함은 조금 뒤로 밀쳐두었다.
어제 버스로 소피아로 들어오는 길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 시간이 넘어서서 릴라산 주변부에 들어서자 풍경이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길의 풍경이다. 이 풍경은 릴라산에 들어서자 다시 한번 바뀐다. 울창한 숲과 길 옆으로 거세게 흐르는 강의 모습. 처음 불가리아에 들어왔을 때 풍경과 비슷하다.
한참을 올라서 다른 분들이 작성한 여행기에서 많이 봤던 수도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여행 가이드는 두 시까지 차로 돌아오라는 얘기를 끝으로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세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았다. 점심시간을 포함한다고 해도 두 시간이니 볼게 좀 되나 보다 싶었다.
릴라 수도원은 크기가 가장 큰 수도원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최근에 여기보다 더 큰 수도원이 지어지고 있다고 가이드가 얘기했던 것도 같다. 수도원은 한눈에 봐도 예쁘게 지어져 있었다. 아쉬운 점은 1층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는 거였다. 수도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기독교나 가톨릭 같이 비슷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나 천정화는 내게는 그냥 그림일 뿐이니 기법이나 색감의 화려함을 보는 것을 제외하면 여타의 다른 수도원 그림들과 차이점은 모르겠다. 그래서 한번 쓰윽 훑어보는 것으로 수도원 둘러보기는 마무리됐다.
Note. 수도원 박물관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들어가서 몇 장 찍고 있는데 직원이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위에 사진은 그전에 찍은 몇 장 중 한 장이다.
수도원의 우측 구석에 박물관이 있어서 거기도 들렀다. 역시나 세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수도원에서 쓰이던 옷, 성수를 담았던 그릇, 성경이나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의 그림들이 있었다. 신기했던 것 그런 용품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화려했다는 점이었다. 성당의 크기나 유물의 화려함으로 보아서 이곳 수도원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도원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에 대해서도 살짝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수도원 둘러보기를 마치고 수도원 근처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메키차라는 기름에 튀긴 빵을 하나 사서 먹었다. 가이드하고 운전기사도 몇 개씩 사가는 걸 보면 여기 인기 메뉴인 모양이다. 뭐 내 입맛으로는 기름에 튀긴 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름에 튀긴 빵 치고는 부드러웠다. 관광 오신 한국분들 역시 이곳에서 빵을 사서 하나씩 나눠드신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점심은 바로 아래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관광지 식당의 기대치를 전혀 벗어나진 않았다. 닭튀김 비슷한 메뉴를 시켰는데 배를 채우는 정도로 만족했다.
시간은 아직 좀 남았다. 솔직히 한국사람 관광 스타일로만 본다면 이곳은 점심식사 포함 두 시간이면 충분할 듯 한 곳이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채웠다. 혼자 왔다면 한두 시간 정도 산책을 했을 듯싶다.
두시에 맞춰서 다시 버스에 타고 두 번째 목적지인 보야나 교회로 향했다. 따로 위치를 찾아보지 않아서 릴라 수도원 근처라고 생각했었던데 버스에서 찾아보니 소피아 시내 근처에 있다. 그렇게 버스는 다시 소파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밖 풍경은 너무 예뻤다. 만년설이 덮여있는 릴라산의 모습도 그리고 노란색, 초록색, 연초록색이 뒤섞인 풍경도 좋았다. 커다란 노란색 밭(?)의 풍경을 보면서 뭘 키우고 있는 걸까 싶었다. 저런 곳에 들러서 간단하게 사진도 찍고 구경하는 것을 이런 여행에 섞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역사적인 유적지 탐방만으로 구성하기엔 하루 여행이 왠지 허전하게 느껴졌다.
소파아에 도착할 무렵 비가 내렸다. 보야나 교회에 도착하지 빗방울이 날리고 있다. 보야나 교회는 매우 조그만 교회 건물이다. 왜 이곳을 보러 왔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크기이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100여 걸음이 될까 하는 크기다. 비까지 와서 아쉬움이 더 커질 때쯤 가이드가 뭔가 설명을 한다. 지하에 들어가는 인원 제한 때문에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뭐가 더 있기는 한가 보다. 10분을 기다려 지하에 들어가니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곳에서 본 많은 그림들 중 일부는 프레스코화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충분히 볼만한 그림 들였지만, 종교적으로 문외한인 나에겐 프레스코화 그림으로 유명한 곳을 봤구나 하는 정도다. 아마 종교적인 배경이 있는 분들이라면 좀 더 많은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버스는 출발지로 향했다. 하루 여행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뭔가 맹숭한 느낌이 드는 여행이다.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섞어서 평이 좋았던 다른 여행이 매진이라서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바로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시간이 일러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을 보고 가기로 했다. 성당의 외관은 화려하다. 성당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계속 오고 가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사진을 찍으려면 10레바를 내라는 문구가 있다. 성당의 경우에 입장료를 받지 않기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입장료 정도인 모양이다. 사진 찍는 걸 막는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찍어갈게 분명할 테니 이렇게 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성당 내부 역시 화려했지만, 이스탄불에서 블루 모스크를 보고 온 이후라 돔 구조물로 표현하는 화려함에 조금은 익숙해져서 감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와~라는 탄성은 나온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어서 저녁 먹거리를 샀다. 그리스에 비하면 여기 식당에서 먹는 건 아주 괜찮다 싶지는 않아서, 어제 사둔 라면하고 김치, 그리고 슈퍼에서 고기 요리 약간을 사서 그걸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라면을 끓이고 사 온 고기를 식탁에 올렸다. 라면은 처음 한 젓가락은 매우 괜찮았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냥 그냥 음식이었다. 한식이 엄청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여행하면서 먹은 음식들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슈퍼에서 사 온 고기 요리는 맛있었다. 내일 저녁에 들어올 때는 좀 더 다양한 음식들도 사봐야겠다고 생각했다.